"도넛 가격으로 끼니 해결"…미국인도 못 참는 '한국 음식'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3-04-21 15:04   수정 2023-09-06 15:45

▶안재광 기자
요즘 식당 가기 무섭죠. 오늘 점심에 저는 평양냉면 먹었는데. 한 그릇에 만5000원. 사리는 8000원. 1만원 이하로 먹을 게 별로 없어요.

그나마 한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미국 유럽에선 햄버거 하나만 먹어도 만 원은 그냥 깨집니다. 식당 가면 세금과 팁도 별도로 내야 하죠. 특히 미국에선 요즘 팁을 밥값의 최소 15%, 보통은 20% 줘야 한다고 해요.

미국인들 벌이가 좋다고는 하지만 부담, 당연히 되겠죠. 그래서 요즘 미국인들도 식사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저렴하게, 그리고 맛있게 한끼 먹을까 하는. 가성비로 먹을 땐 보통 샌드위치 많이 먹어요. 빵에 햄 같은거 넣고. 아니면 도넛 하나 들고 커피 한잔. 그런데 요즘 이런거 말고, 신종 음식이 뜨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라면입니다. 라면은 그동안 미국에서 주로 아시아인들이나 사먹는 일종의 틈새 상품, 메인 디시는 아니었는데. 고물가 때문인지 미국인들 사이에서 꽤 인기라고 해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라면은 저렴해서. 봉지라면 하나에 1500원 정도면 삽니다. 미국인들 덩치가 좀 크니까. 두 개 끓여 먹는다고 해도 3000원. 도넛 하나 가격이에요.

미국 라면 시장에서 특히 한국의 농심 라면이 굉장히 잘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원래 미국 라면 시장은 도요스이산, 닛신 같은 일본 회사들이 꽉잡고 있었는데. 농심이 미국 시장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라면은 미국인도 못참지, 농심 입니다.

농심은 롯데와 한뿌리죠.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동생이 농심을 창업했습니다. 신춘호 회장인데요. 1965년 회사를 세웠어요. 원래 이름이 농심은 아니었고, 롯데공업이었어요.

많이 알려진 일화지만, 신춘호 회장은 형인 신격호 회장과 사업 하는 내내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어요. 창업 때부터 꼬였죠. 신춘호 회장이 라면 사업을 제안했더니 신격호 회장이 단칼에 "안 돼" 하고 거절했다고 해요. 그래도 하겠다고 기어코 했더니, 그럼 회사 이름에서 '롯데' 빼라. 그래서 농심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말이 있어요. 농심은 농부의 마음이란 뜻입니다.

농심이 라면사업 잘 하고 있는데 롯데가 2010년 '롯데 라면'으로 농심을 위협한 적도 있습니다. 롯데 라면이 잘 되진 않았지만, 신춘호 회장 입장에선 동생이 라면 사업 달랑 하는데 도와는 못 줄 망정, 어떻게 그러냐. 할 법 해요.

신격호 회장이 2020년 초에 돌아가셨는데, 신춘호 회장은 장례식장에 끝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 때 장례식장에 있었는데, 신격호 회장의 다른 형제들은 봤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신춘호 회장이 그땐 너무 고령이라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간 것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죽기 전까지 화해는 안했습니다.

신춘호 회장, 나름 소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있는데. 이 소신이 지금의 농심을 만든 것으로 볼 수도 있어요. 신춘호 회장은 대외 활동 거의 안하고, 오로지 회사 경영에만 집중했어요.

농심의 최대 히트작인 신라면의 경우 이름부터 컨셉, 심지어 광고 카피까지 신춘호 회장이 직접 주도했다고 하죠. 예컨대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이게 신춘호 회장 작품이라 해요.

또 농심의 과자들은 감자깡, 양파깡, 옥수수깡 같은 '깡' 시리즈로 유명한데. 1970년대 나온 새우깡에서 시작 됐거든요. 이 새우깡을 신춘호 회장이 직접 작명했다고 해요. 새우깡. 지금 들으면 별 감흥은 없는데. 당시엔 꽤 파격적이었다고 하던데.

농심이 국내 라면시장에서 1위를 굳힌 사건이 있었는데. 1989년 불거진 일명 우지, 쇠기름 파동이었습니다. 당시 농심과 라면 1위를 다퉜던 삼양식품이 미국에선 식용이 금지된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겼다. 이 사실이 알려져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농심은 일찌감치 우지 대신 식물성 팜유를 썼기 때문에 반사이익을 봅니다.

사실 그 전부터 농심 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1982년 너구리, 1983년 우리가족 안성맞춤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으로 4연타석 홈런을 쳤는데요. 여기에 우지 파동까지 겹쳐서, 삼양식품에 콜드게임 승을 거뒀어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비슷했던 시장 점유율이 1990년에 압도적으로 벌어집니다.

농심은 전형적인 내수 기업, 이었습니다. 과거형이에요. 지금은? 수출기업. 반도체, 자동차 만큼은 아니지만. 수출을 꽤 하죠. 2022년 농심 매출이 3조원을 조금 넘었는데, 이 중 해외 비중이 30% 가까이 합니다. 9000억원 넘는 매출이 해외에서 나왔어요.

특히 북미 지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데. 미국에서 5000억원 가까운 매출이 터졌습니다. 캐나다까지 합하면 5600억원에 달해요. 북미 지역의 작년 매출 증가율은 39%. 같은 기간 농심 전체 매출 증가율 17.5%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요. 농심의 해외 매출이 과거에는 중국, 일본, 동남아 위주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서 북미가 주력 시장입니다. 중국 일본 동남아 다 더해도 미국 하나 못이겨요.

미국의 라면 시장. 농심이 가기 전에는 일본 기업들 차지였어요. 농심은 후발주자로 들어갔는데, 현재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1등 토요 스이산 점유율이 50% 가까이 하는데, 농심이 이걸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2025년에 미국에서만 매출 1조원 넘기는 게 목표라고 하죠. 신라면을 개당 1000원 잡으면 10억개를 일 년에 팔아야 하는데. 미국 인구가 3억명이 조금 넘으니까. 1인당 일 년 간 세 개씩 끓여 먹으면 얼추 맞추겠네요.

참고로 한국인은 1인당 평균 73개 먹습니다. 일 년에요. 한국인보다 더 많이 먹는 나라가 베트남. 87개로 세계 1등이에요.

농심은 2005년 미국에 라면 공장을 지었는데 주문이 밀려들어서 지난해 두 번째 공장을 또 지었습니다. 이 두 번째 공장 가동률이 아직은 50% 미만인데. 그러니까 공장의 절반만 돌렸는데도 매출이 확 늘었으니까. 100% 가동하면?

팔데는 많아요. 그동안 월마트, 코스트코 위주로 팔았는데. 샘스클럽. 여기는 코스트코 다음가는 회원제 할인점이죠. 여기 들어가서 대박이 났습니다. 또 미국 슈퍼마켓 2등인 크로거에 입점해서 굉장히 잘 되고 있어요.

일본, 중국 봉지 라면이 마트, 슈퍼에서 개당 1달러도 안 하는데. 신라면, 짜파게티는 1.5달러? 한 50%쯤 비싼데. 그런데도 잘 팔립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영화 기생충 같은 곳에서 자꾸 라면 먹는 게 나오니까. 미국인들도 한국 라면, 꽤 친숙합니다.

농심 라면 잘 되긴 하는데. 아킬레스건도 있어요. 많이 팔아도 남는게 별로 없어요. 농심은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넘기고도 영업이익은 1100억원 수준에 불과했어요. 영업이익률은 3.6%. 2020년 6.1%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한동안 제품 가격을 못 올려서 3% 대까지 밀렸어요.

제조업은 산업 특성 상 이익률이 낮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 낮죠. 주식 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보는 지표 중에 자기자본이익률, ROE란 것이 있는데. 내 돈 100원을 넣으면 얼마 벌어 줄래, 하는 개념인데요. 농심의 ROE는 5% 안팎에 불과해요. 100원 넣으면 일 년에 5원 벌어 준다. 은행 이자보다 좀 많긴 한데. 뭔가 아쉽죠. 우량 채권도 연 5% 이자 주는 게 많은데.

그런데, 이런 수익성 지표. 영업이익률이나 ROE가 올라갈 여지가 있습니다. 제품 가격을 올려서인데요. 라면은 서민이 먹는 음식이란 이미지가 있어서 가격 올릴 때 정부 눈치, 엄청 봐야 합니다. 물가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라면값이죠. 특히 선거 앞두고 있으면 라면값 올리는 거, 그냥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과감하게 올렸어요. 대통령 선거가 우선 끝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국제 곡물가격이 급격히 뛰었습니다. 올릴 명분이 생긴거죠. 주력 제품인 신라면의 경우 개당 출고가가 2020년 608원이었는데, 2021년 654원, 그리고 2022년 726원까지. 약 20%가 올랐네요. 짜파게티는 같은 기간 가격 상승률이 더 높아서 24%나 됐어요. 693원에서 863원까지 상승했습니다. 물론 이건 농심의 출고가 입니다. 박스로 나가는. 실제 소비자가 사는 가격은 이것 보다는 높아요. 새우깡 가격도 1년 새 14.4%나 뛰었고요.

가격이 오르면 안 사먹지 않냐. 꼭 그렇진 않아요. 일반 상품은 대부분 그런데. 라면, 과자는 그냥 사먹죠. 이마트에서 신라면 5개 묶음이 현재 4100원, 개당 820원인데. 이거 일 년 전에 얼마였는지 기억 대부분 못하시죠.
조금 유식한 용어로 '가격 탄력성이 낮다'고 하는데. 가격이 올라도 수요는 안 떨어진다. 과자도 비슷한데요. 새우깡 한 봉지에 이마트에서 1200원쯤 하는데. 이거 작년에 1100원 하다가 1200원 됐다고 안 사진 않죠.

근데, 농심이 파는 라면, 과자. 한 번 가격 올라가면 절대 안내려요. 기름값 처럼 올랐다 내렸다, 그런거 없어요. 원재료 가격 상승을 명분으로 올렸는데, 원재료가 떨어져도 비싸게 받는다는 얘깁니다. 그럼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면 대박인데. 정말 떨어지고 있어요.

국제 밀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한 때 톤당 500달러가 넘었는데, 지금은 300달러대로 떨어졌습니다. 전쟁 발발 이전 수준과 큰 차이가 없어요. 밀 뿐 아니라 물가 전반이 그래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CPI는 2022년 6월 9.1%를 정점으로 계속 내려가서 올 3월 기준 5%까지 떨어졌어요. 생산자물가지수, PPI. 이게 농심 같은 제조사에는 더 중요한데. 전월 대비로 올 3월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달 1% 안팎 오르는 걸로 나왔는데. 올 들어 굉장히 많이 떨어졌죠. 농심에서 라면, 과자 이런거 만들 때 들어가는 원재료 값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 가격이 이미 오른 상태다. 그리고 요즘 수출 많이하는 미국에선 가격 올리기 더 쉽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분석 때 기업 이익은 P, Q, C의 함수라고 하는데. 굉장히 간단한 산수니까 배워봅시다. 이익은 P 곱하기 Q 빼기 C. 여기서 P는 Price. 그러니까 제품 가격은 오르는 게 좋은데 농심에 적용하면 가격 이미 올렸죠. Q는 Quantity. 판매 수량. 이건 미국, 캐나다 같은 해외 시장 개척으로 늘리고 있고요. C, cost는 원재료 가격이 내려서 낮아졌어요. P Q C 이익의 모든 조건을 2023년 농심이 유리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주가에는 반영이 되고 있어요. 2022년 6월 26만까지 밀렸던 주가가 일 년도 안 돼 40만원 안팎에 이릅니다. 주가수익비율 PER은 15배 수준. 코스피 평균 13배 대비 프리미엄이 붙었어요. 주가가 싸지 않아요. 근데, 더 오른다, 프리미엄 더 줄수 있다. 이런 주장도 나옵니다. 수출을 많이 하니까 해외 식품 기업 주가와 비교해야 한다는 건데요. 농심이 미국에서 경쟁하는 도요스이산 PER이 20배 안팎 하거든요. 농심이 PER 20배 받으면. 단순 계산으로 25%는 오를 수 있다. 이건 증권사들 분석이니 참조만 하시고

신춘호 회장의 뒤를 이어 농심을 이끌고 있는 신동원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글로벌 사업 확장은 시대적 과제다" 또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 인수합병(M&A)도 적극 검토하겠다"
총수가 말 한 것이니까 의미가 있죠. 미국이나 멕시코에 해외 공장 또 짓겠다. 직접 하다가 안 되면 다른 회사 인수할 예정인데, 지금 눈여겨 보고 있어. 이렇게 들려요. 해외 M&A를 위한 테스크포스 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농심이 세계 라면 시장 정복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농심 과자도 정말 좋아하는데. 수미칩, 쫄병스낵, 꿀꽈배기. 농심 과자도 해외에서 대박 한번 내길 기원해 봅니다.

라면 한류 일으킨 농심, 얼마나 더 성장할 지 눈여겨 보겠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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