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라스베이거스' 꿈꿨는데…강원랜드 '끝없는 추락'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3-07-04 12:10   수정 2023-07-04 13:29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해발 1100m 백운산의 고갯마루에 강원랜드가 들어선 건 2000년 6월 29일이다. 올해로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국내 유일의 내·외국인이 모두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 시설로 출발한 강원랜드는 4반세기의 역사가 무색할 만큼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다.

주가는 2001년 상장 이래 최저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3일 종가가 1만7490원으로, 공모가인 1만8500원보다 낮다. 지난해 공공기관평가에선 D등급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사장으로 임명된 이삼걸 강원랜드 대표는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7일엔 폐광지역 4개 시·군 단체가 이 대표의 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민영화 못한 관제 기업의 한계

강원랜드의 추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출발선 자체가 모순을 잉태한 채였다. 1998년 폐광지역 경제 회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법인을 설립하면서 초대 사장에 경기은행 지점장, 전기안전공사 감사를 지낸 서병기 씨가 임명됐다. 그 후로도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가 반복됐다. 강원랜드의 최대 주주는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3월 말 기준 지분율은 36%다.

KT, KT&G, 포스코와는 완전히 길이 달랐다. 이들 3인방은 민영화와 상장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KT만 해도 1998년에 상장한 뒤, 2002년 8월에 민영화됐다. KT&G도 같은 해에 정부가 손을 뗐다. 포스코는 2000년에 민영화 절차를 밟았다.

강원랜드가 왜 민영화를 미루고 있는지는 그간의 사건·사고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대규모 채용 비리에 연루됐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강원랜드 채용 비리 특별수사단’이 출범하기도 했다.

25년째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으로 남아 있는 강원랜드가 존속을 위한 볼모처럼 상장사란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강원랜드는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에 따라 10년 기한으로 내국인 카지노라는 특혜를 받았다.

하지만 상장하는 순간, 10년 기한은 공수표나 다름없었다. 특혜가 철회되면 주가 급락이 불을 보듯 뻔한 터라 어떤 정부도 기한 종료라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작년 말 기준 소액주주 비율은 36.85%다.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외국인 지분율도 16.45%(지난달 29일 기준)에 달한다. 결국 특별법은 세 차례 연장돼 2045년까지 기한이 늘었다.
“지역 소멸 막을 줄 알았는데”…정선군의 강원랜드 의존도만 높아져

민영화 거부의 이유로 공공성 확보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해석도 가능하지만, 통계 수치들은 오히려 이를 반박한다. 정선군은 2023년도 예산 기준 재정을 공시하면서 이렇게 적시했다. “경제 성장세 둔화에 따른 강원랜드 매출 부진 등에 따라 지방세, 폐광기금 등 자체 수입의 감소가 예상되므로 재정 규모 확대를 위해서는 의존 재원 확보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코로나19가 몰아친 2021년엔 당초 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기준 통합재정수지(순세계잉여금 포함)에서 10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예산 규모(세입예산)도 5440억원으로, 동일 유형 지방자치단체 평균액(5907억원)보다 467억원이 적었다.

지난 10년간 정선군의 인구 역시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3년 3만9985명에서 지난해 3만4931명으로 12% 감소했다. 양양군이 같은 기간 2만7659명에서 2만7866명으로 소폭이나마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생활 인구라는 개념에서 보자면, 정선군은 실패 사례에 가깝다. 생활 인구는 내·외국인 관광객, 해당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치료받으러 온 타지 시민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연간 양양을 찾는 관광객만 해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1박 이상 해당 지역에 머무르며, 소비 생산 교육 등을 영위하는 인구’를 뜻하는 체류 인구로 양양의 인구를 측정할 경우 약 4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정선군은 강원랜드라는 손쉬운 치료제에 중독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선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처럼 만들어 줄 것 같았던 강원랜드는 오히려 정선군이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는 데 장애가 됐다. 관광·레저를 통한 지방 부활에 관한 한 정선군은 실패 사례인 셈이다.
전문성 찾아볼 수 없는 강원랜드 이사진
무려 25년간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강원랜드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임원 현황만 봐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제2차관 출신인 이삼걸 대표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낙하산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내외 이사 모두 관광, 레저, 카지노와 관련된 전문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내이사이자 업무 총괄인 오정훈 상생경영본부장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복지본부장 출신으로, 전임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경영 자문 역할로 구성된 사외이사 10명의 전현직 직업(지난해 말 기준)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사무국 부회장, 영월군청 경제정책과장, 국세청 세무조사관,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고문, 한영회계법인 회계감사, 고한·사북·남면·신동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 위원장, 도계읍 번영회 회장, 정산금속공업 경리과 계장, 영월군 주민복지과장, 고한읍 번영회 회장.

강원랜드 홈페이지엔 자사의 비전에 대해 “천혜의 관광자원 및 주변 지역에 계획 개발되고 있는 관광사업과 연계하여 (정선군이) 우리나라 관광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며 “항공 · 해상 교통을 이용한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도 잇따를 것”이라고 했다. 공허한 장밋빛 전망이다. 전 정권의 인사라는 이유로 이삼걸 대표가 교체되고 후임이 온다고 한들, 민영화 없는 강원랜드의 미래는 지난 25년간 크게 다르지 않을 게 자명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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