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부족도 페이로 결제"…中은 왜 디지털 화폐로 가려하나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3-09-27 11:32   수정 2023-09-27 11:41


중국 상하이 탐방은 오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상하이를 방문한 마지막 해가 2009년이었다. ‘상하이 엑스포 2010’ 개최를 앞두고 푸둥에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시절이다. 그 사이 중국은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다. 상하이는 인구 3000만명의 메트로폴리탄으로 변했다.

중국몽(夢)을 실현하겠다며 세계를 향해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급성장한 중국의 변화를 그동안 풍월로만 들었다. 변화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중국 정부가 유커를 해외로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바로 결심했다. ‘지금이 가야 할 때다’. 여름의 끝이 보이던 9월의 어느 날 3일간의 짧은 여정을 잡고 홀로 상하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금없는 사회의 완전한 실현
가장 궁금했던 건 중국의 ‘디지털 세상’이었다. ‘중국에선 거지도 위챗페이로 동냥한다’는 말을 뉴스로 접했을 때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당시 생각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나 그렇겠지’였다.

상하이에서 거지를 볼 수 없어 동냥 운운하는 얘기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모든 금융 결제는 휴대폰에 탑재된 페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만 이뤄지고 있었다. 면세점에서 관광객을 위해 일부 신용카드를 받아주기는 했지만, 내국인들은 휴대폰 없이 외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중국의 변방에서도 이 같은 디지털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다’였다. 필자처럼 의문을 갖는 이들에게 중국 사람들이 드는 사례가 있다. 중국 남부 윈난성 린창(臨滄)이라는 변방에 아직 원시 부족 생활을 하는 소수 민족인 와족의 얘기다.

와족은 사람의 머리를 베어 긴 죽창에 꿰어 놓는 엽두 문화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부족이다. 지금은 와족의 노인들도 휴대폰을 쓰고, 꼭 필요한 공산품을 디지털 화폐로 결제해서 구매한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중국 정부가 2011년부터 시작한 탈빈곤 정책이다.
8000만명 공무원을 탈빈곤에 투입한 시진핑
중국 공산당은 약 8000만명의 공무원을 중국 전역의 빈곤 지역에 급파해 소수민족에게까지 휴대폰을 지급했다. 통신비는 무료다. 정부는 탈빈곤을 위한 각종 보조금을 디지털 화폐로 지급했다. 까막눈이건 디지털 문맹이건 정부 돈을 받으려면 휴대폰을 쓸 줄 알아야 했다.

중국 공산당은 왜 디지털 경제의 구현에 이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상하이에서 만난 이들의 답은 다양했다. 대부분은 완벽한 디지털 화폐의 구현이 최종 목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달러 패권에 맞서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위안화 결제를 받아들일 후보국들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다. 이들은 현금, 신용카드를 넘어 곧바로 휴대폰 결제로 직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달러 패권에 맞서려고 리창의 와족에게까지 보조금을 디지털 화폐로 지급하나? 어쩌면 위안화 패권에 대한 열망은 본(本)이 아니고, 말(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조의 명멸을 지켜봤다. 흥했던 왕조도 반드시 망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청(淸)조차 300년을 못 넘겼다. 역대 왕조가 말년에 겪었던 공통된 두 가지 고질병이 있다. 부패와 농민 반란이다. 관직을 돈으로 사고팔고, 백성에게 가야 할 세금이 중간에 새는 등 부패가 심해지면 어김없이 지방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의 국가 시스템은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를 무기로 변방 끝 촌락에까지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 행정 국가다. 동시에 공산당 1당 지배만 허용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옛 왕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적 편견이 들어간 표현이긴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핵심 가문은 ‘홍색 귀족’이라 불린다.
신하방 정책의 진짜 목적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으면서 시진핑 정권은 농촌에 대한 관리에 정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신(新)하방’ 운동은 시진핑 주석이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도시 실업률 해소와 농촌 현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효를 거두기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상 개조 운동에 가깝다. ‘공산당은 농촌과 농민을 중시한다’는 시그널 말이다.

디지털 화폐야말로 부유층의 부패와 경제적 양극화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보검이다. 누구든 디지털 숫자로만 거래하는 세상에서 숨길 수 있는 돈이란 없다. 정부는 중간의 각종 대리인을 거치지 않고 중국 변방 구석구석에까지 신민의 지갑에 보조금을 쏴줄 수 있다. 중국 내부에선 이런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 주석에 대한 농민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다’. 마오쩌둥이 국면 전환을 위해 즐겨 썼던 전술이다.

워싱턴은 한때 중국이 글로벌 자본주의 질서 속에 온전히 편입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월가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중국 유망 기업들을 뉴욕에 상장시키는 데 투입됐다. 하지만 중국은 워싱턴의 그물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중국에 대한 오판이란 측면에선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를 주창하던 정부는 시진핑의 중국이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라는 모순을 이겨낼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중국은 혐한(嫌韓)으로 화답했다. 문제는 현재의 중국을 또다시 오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치(內治)에 관한 한 중국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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