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마이스키 '천재들의 재회'…드보르자크 열정 피워냈다

입력 2023-09-24 18:48   수정 2023-09-25 01:08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라트비아 출신의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가 1992년 내한 공연 당시 열 살짜리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 비디오를 보고 단번에 천부적인 재능을 확신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제지간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 2012년 이후 11년 만에 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장한나 & 미샤 마이스키 위드(with) 디토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스승인 마이스키는 첼로를 잡았고, 그의 유일한 제자 장한나는 지휘봉을 들고 포디엄에 올랐다. 디토 오케스트라는 2030세대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악단이다.

오후 5시.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무대로 걸어 나온 마이스키가 들려준 곡은 ‘첼로 협주곡의 황제’로 불리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였다. 그의 고향인 체코의 슬라브 문화와 당시 체류 중이던 미국의 민요 정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마이스키는 과도한 힘을 주기보단 팔의 무게만을 이용해 활을 현에 밀착시키면서 드보르자크 특유의 강렬한 음색을 뽑아냈다. 그는 현에 가하는 장력, 보잉(활 긋기) 속도, 비브라토 폭 등을 예민하게 조절하면서 어떤 때는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격렬함으로, 어떤 때는 향수가 깊게 배인 애절함으로 드보르자크의 서사를 풀어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들릴 수 있는 단순한 선율에도 하나하나 풍부한 색채를 덧입히며 만들어내는 입체감, 왼손과 오른손을 긴밀하게 움직이면서 일으키는 유선형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그가 ‘왜 대가로 불리는지’ 새삼 일깨워줬다.

다만 디토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마이스키가 임의로 템포에 변화를 주는 구간에서 악단이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하면서 선율 간격이 벌어지는 순간이 더러 있었고, 악단이 너무 크게 소리를 내면서 마이스키가 제한된 음량에서 이뤄내는 섬세한 톤 변화를 제대로 듣기 어려운 경우도 여러 차례 생겨났다. 이 때문에 음향적 조화를 이루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2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으로 채워졌다. 장한나의 확신에 찬 지휘에 단원 전체가 집중하려는 모습은 좋았으나, 프로젝트 악단이 흔히 그렇듯 베토벤 특유의 장엄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사운드와 음향적 입체감을 살려내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전체적인 음량은 큰 편이었으나 소리가 하나로 모여드는 응집력이 약하게 형성됐고, 현악과 목관의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은 견고한 편이었으나 작품의 전경과 후경을 담당하는 악기군의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다소 산만한 인상을 남겼다.

셈여림, 템포, 악상 변화가 점진적이기보단 비약적으로 이뤄졌는데 이 때문에 1악장 ‘비극적인 운명의 동기’에서 4악장 ‘승리를 쟁취한 희열’에 도달하기까지의 음악적 장관이 면밀히 연출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마이스키의 연주였다. 시뻘게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면서도 한 음 한 음에 자신의 모든 혼을 쏟아내던 그의 모습은 젊은 연주자들에게 ‘음악가의 자격’을 몸소 보여주는 듯했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곡이든 한나 너와 함께라면 좋다.” 2012년 장한나가 마이스키에게 협연 의사를 물었을 때 받은 답이다. 서로에 대한 끈끈한 음악적 신뢰를 지닌 두 사람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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