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나"…1조 투자한 애플의 굴욕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3-10-07 19:54   수정 2023-10-07 19:55


천하의 애플도 힘을 못 쓰는 분야가 있다. '5G 모뎀칩' 개발이다. 최소 5년 이상 모뎀칩 독자 개발을 위해 애썼지만, 현재까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5G 모뎀칩은 데이터 송수신을 담당하는 스마트폰의 핵심 칩이다. 이 분야 세계 1위는 미국 퀄컴이다. 퀄컴은 사명(QUALCOMM, Quality Communications)에서 짐작할 수 있듯 1985년 설립 이후 모뎀, RF 칩 등 통신용 반도체를 주력 제품으로 성장했다. 칩 판매와 특허 라이선스·로열티가 매출의 대부분이다. 2023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356억8000만달러(약 48조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퀄컴에 자존심 굽힌 애플
2010년대 중반까지 애플은 아이폰에 퀄컴의 모뎀칩을 썼다. 2015~2017년 각국 경쟁 당국(공정거래위원회)이 퀄컴의 특허 정책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조사할 때 애플은 퀄컴의 반대편에 섰다. 퀄컴과의 거래가 끊어졌고 대안으로 인텔 모뎀칩을 썼다. 그리고 2018년 애플은 모뎀칩 자체 개발을 시작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19년께 애플은 5G 스마트폰 출시에 어려움을 겪었다. 모뎀칩 개발을 못 했고, 공급사였던 인텔이 5G 모뎀칩을 내놓지 못해서다. 울며 겨자 먹기로 퀄컴과 5G 모뎀칩 공급 관련 협상을 시작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그 사이 애플의 경쟁사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세계 최초의 5G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5G 모뎀칩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삼성전자에 5G 모뎀칩을 공급해달라고 했지만, 삼성은 "우리 물량도 부족하다"며 난색을 보였다. 결국 애플은 자존심을 굽히고 한 때 맞섰던 퀄컴으로부터 5G 모뎀칩을 받게 된다.
애플, 2023년 모뎀칩 독립 실패
애플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9년 7월 애플은 인텔 스마트폰 모뎀사업부를 10억달러에 인수했다. 끝이 아니다. 퀄컴의 인력을 끌어오는 데 힘썼다. 퀄컴에서 모뎀 개발을 담당하는 팀 전체를 통째로 데려오기도 했다.

'2023년 모뎀칩 독립'을 목표로 삼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의 모뎀칩 개발 프로젝트명은 '시노페'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마수에서 벗어날 만큼 지혜로움을 갖춘 여신이다.

시노페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는 실패다. 애플이 지금까지 5G 모뎀칩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못했다. 지난달 애플이 퀄컴으로부터 '5G 모뎀칩'을 2026년까지 공급받는 계약을 다시 체결한 데서 드러난다. 퀄컴은 지난달 11일(현지 시각) 애플에 5G 모뎀칩을 최소 3년 이상 더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퀄컴 주가는 나흘(11~14일) 연속 올랐다.
모뎀칩 개발은 '하늘의 별 따기'
애플은 반도체 개발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독자 개발하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A14, A15, A16 등 애플의 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AP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런 애플이 모뎀칩 개발과 관련해선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모뎀칩 개발의 난이도가 AP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P는 영국 ARM의 설계자산(IP)을 기초로 만들 수 있는데 모뎀칩은 그렇지 않다"며 "퀄컴 같은 모뎀칩 전문 업체의 40년 노하우를 단숨에 따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신 모뎀칩이 3G, 4G 등 과거 통신표준까지 커버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점으로 꼽힌다. 실제 5G 스마트폰도 4G 이동통신을 쓰기도 한다. 자동차에 내장된 통신 장치들은 현재 4G가 주력이다. 이 관계자는 "최고 수준의 인력을 데리고 5G 모뎀칩을 개발하더라도 끝이 아니다"며 "5G 모뎀칩이라도 3G, 4G까지 다 커버해야 하는데 이는 축적된 노하우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자사 핸드폰에 특화된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퀄컴 등이 보유한 통신 특허를 회피해서 설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나저러나 퀄컴에 종속되는 상황이란 얘기다. 많은 통신용 칩 개발사들이 퀄컴과 라이선스·로열티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밖에 AP 개발의 성공에 취한 애플 경영진들이 모뎀칩 개발을 '너무 쉽게 봤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독자 개발...최신 고성능 모뎀칩 공개
삼성전자는 애플과 상황이 좀 다르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5G 모뎀칩을 독자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현재 4나노미터(nm) 공정을 이용하는 엑시노스 모뎀 5300이 간판 제품이다. 최대 10Gbps의 다운로드 속도와 최대 3.87Gbps의 업로드 속도를 제공한다. 이 모뎀은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된다.

물론 삼성전자도 퀄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상호 특허 교환 계약(크로스 라이선스)을 체결하고 퀄컴에 로열티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대만 미디어텍과 함께 퀄컴의 대안으로 꼽히는 몇 안 되는 기업으로 꼽힌다. 한때 퀄컴의 견제도 심했지만 2017년 공정위의 조사 이후 두 회사는 과거 대비 합리적인 수준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삼성전자는 새로운 5G 모뎀칩을 공개했다.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시스템LSI 테크 데이'에서 삼성전자는 스카일로 테크놀로지스(Skylo Technologies)와 함께 '차세대 5G 모뎀'을 선보였다. 비(非)지상 네트워크(NTN, Non-Terrestrial Network) 솔루션을 하나의 칩에 통합해 끊김이 없이 넓은 커버리지, 디자인 유연성을 제공하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비지상 네트워크 기술은 비상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테크 데이 행사에서 실제 휴대폰 서비스 불가 지역에서 모뎀칩을 활용해 인공위성을 5G로 연결하고 양방향 문자 송수신을 통해 구조 요청하는 데모 영상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토털 솔루션 공급사로서 단순한 반도체 공급을 넘어 부품, 패키지, 시스템, 모바일 및 자동차 분야 솔루션 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며 "다양한 영역에서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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