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여자골프 역사 담긴 명문코스…"쭉 뻗은 페어웨이 장타본능 깨워"

입력 2023-10-11 19:10   수정 2023-10-12 00:54


‘골프 발상지’란 수식어만 빼면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그다지 특출난 코스는 아니다. 바닷가 옆에 일자로 쭉 뻗은 홀을 따라 나갔다가, 나간 길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여서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린 퍼블릭 골프장이란 점도 다른 명문 구장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는 지난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골프 코스는 (메이저대회 디오픈이 열리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 얘기를 했다. ‘마스터스의 고향’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다른 골프장에 ‘엄지척’을 내준 것이다. “올드코스의 역사와 상징성 등 ‘최초’ 타이틀에 우즈가 높은 점수를 준 것”이란 얘기가 골프업계에서 나왔다.

한국에도 비슷한 코스가 있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의 발상지’로 불리는 경기 양주 레이크우드CC다. ‘제1회 여자프로테스트’가 열린 곳이어서다. 1978년 당시 로얄컨트리클럽 명패를 단 이 골프장에서 탄생한 1~4호 프로선수가 강춘자 한명현 구옥희 안종현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만든 ‘개국공신’들이다. 그때 1등을 해 ‘1호 여자 프로골퍼’ 타이틀을 단 강춘자 현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주식회사(KLPGT) 고문을 뺀 셋은 세상을 떠났다.
○KLPGA의 고향 레이크우드CC
골프장 곳곳에 묻어 있는 여자 프로골프 역사를 듣다 보니 어느새 꽃길 6번홀이다. 레이크코스의 시그니처 홀. 이 코스는 오는 19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KLPGA투어 ‘상상인·한국경제TV 오픈 2023’의 대회장으로 쓰인다. 황준선 레이크우드CC 본부장은 “일자로 뻗은 홀이 많아 선수들의 ‘장타 본능’을 자극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시그니처 홀은 파5 롱 홀이다. 그린 앞에 펼쳐진 호수가 위협적이지만,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이 보이니 마음이 놓였다. 길지 않은 파5로 보이는데, 캐디의 설명은 영 다르다. “화이트 티에서 490m(블루 506m, 골드 447m, 레드 428m)입니다.” 잘 쳐도 ‘2온’은 어렵다는 얘기였다.

레이크우드CC는 생긴 지 50년이 넘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중 하나다. 1972년 이 일대에 주둔한 미군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이를 1977년 전원산업의 자회사 로얄개발이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전원산업은 1995년 서울 강남에 있는 남서울호텔을 인수해 리츠칼튼 서울로 바꾼 그 회사다.

레이크우드CC는 36홀짜리 골프장이다. 부지 크기(180만㎡)만 보면 54홀을 넣을 수 있지만, 처음엔 18홀만 넣었다. ‘널찍한 페어웨이’, 그게 다였다. 코스가 너무 밋밋한 탓에 실력 있는 골퍼들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전원산업이 인수한 뒤 코스를 다시 설계했다. 연못을 16개 파고, 페어웨이에 언듈레이션을 넣으니 완전히 다른 골프장이 됐다.

1992년 9홀을 증설한 데 이어 2015년 9홀을 추가 조성해 지금의 36홀이 됐다. 이 과정을 세계적인 골프장 설계가 데이비드 데일 등에게 맡겼다. 티잉 에어리어를 양잔디(켄터키 블루그래스)로 교체한 것도 이때였다. 페어웨이는 중지, 그린은 벤트그래스다.

KLPGA도 레이크우드CC처럼 업그레이드됐다. 1978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안에 여자 프로부를 신설한 KLPGA는 이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와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에 이은 세계 3위 여자 프로골프 단체가 됐다. 회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KLPGA의 눈부신 성장에 레이크우드CC도 한몫했다. 2016년 KB금융 스타 챔피언십과 KLPGA 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를 개최했고, 지난해에는 ‘KLPGA 챔피언십 전용 코스’를 맡기로 했다. 마스터스가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만 열리듯, 앞으로 KLPGA 챔피언십은 이곳에서만 개최된다는 얘기다.
○직선거리 390m, 2온 도전 자극
490m라는 숫자에 겁을 먹었는데, 눈에 보이는 숫자가 전부는 아니었다. 캐디는 “공식 거리는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기준으로 빙 돌아갔을 때 얘기고, 실제 티잉 에어리어에서 홀까지 ‘직선거리’는 390m 정도”라고 했다.

장타자의 경우 ‘2온’을 노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완벽한 티샷이 필요하다. 페어웨이에서 그린을 막고 있는 소나무 때문이다. 페어웨이 우측에 공을 떨궈야 한다. 그래야 그린이 보인다. 왼쪽으로 공을 떨어뜨리면 십중팔구 러프에서 우드를 잡아야 한다.

말한 대로 됐다. 왼쪽으로 감긴 공은 러프에 떨어졌다. 큼지막한 호수가 무서워 끊어 가려고 하니, 캐디가 말렸다. “홀까지 190m 정도 남았어요. 그런데 호수 건너편 페어웨이가 좁아 끊어 가는 것도 쉬운 건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2온을 한번 노려보세요.”

우드로 잘 칠 자신도 없으면서 욕심을 냈더니 깎여 맞았다. 밀린 공은 그린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은 질긴 러프에 잡혀 물에 빠지지 않은 것이었다. 3온 뒤 3퍼트. 보기. 캐디는 “이 호수에 매달 공이 1000개씩 빠진다”며 “일단 호수를 넘긴 것만 해도 충분히 잘했다”고 했다.

레이크우드CC의 강점 중 하나는 뛰어난 접근성이다. 서울 전역에서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서울외곽순환도로나 구리~포천 고속도로를 타면 된다. 클럽하우스에는 미국 유명 화가 키스 해링의 작품 등 멋진 그림도 많다.

양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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