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악플러… 손가락 살인의 시대를 사는 법 [책마을]

입력 2023-10-13 14:21   수정 2023-10-15 10:06



“지금은 손가락 살인의 시대다.”

<손가락 살인의 시대와 법>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례는 수없이 많다. 연예인 설리와 구하라, 배구선수 김민혁, 인터넷 방송인 잼미 등 책에 거론된 사건 말고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저자들은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사회적 지위도 상관없이 가상 세계에서 악플러가 되기도 하고 어느새 스토커가 되기도 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저자인 류여해 수원대 법학과 특임교수와 정준길 변호사는 한때 정치인이었다. 여러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본업에선 나름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류 교수는 독일 예나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형법 전문가다. 정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 검사 출신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명예훼손, 모욕, 스토킹 범죄와 관련한 여러 사례와 판례 해설이다.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어렵지 않게 내용을 설명한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게 나쁘다는 건 다 안다. 그런데 법으로 이를 처벌하려면 까다롭다. 저자들이 “책을 써보니 정말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 정도다. 2022년 불법 주정차한 자신의 차량을 신고한 사람에게 불만을 품고, 이 사람의 얼굴 사진을 첨부해 ‘신나게 온 동네 주차위반 신고하시는 열녀’라고 쓴 종이를 주택가 곳곳에 붙인 사람이 명예훼손죄로 유죄를 받았다.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죄가 성립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도, 이니셜을 써도, 주변 사람들이 주어진 정보로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다면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수도권 여당 C의원실 유부남 보좌관, 미혼 여비서’라고 해도 이들의 직업과 소속이 나오고, 그 무렵 여비서가 그만두었다는 사정까지 나오면 국회 근무자나 그 주변 사람들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피해자 특정’ 여부라고 한다.

‘공연성’도 유죄 여부를 가리는 데 중요한 쟁점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비방 글을 올리는 건 당연히 공연성이 인정된다. 그런데 몇몇 사람에게만 말해도, 그 말이 퍼져나갈 수 있으면 유죄가 된다. 가족이나 친인척, 매우 친한 사람 등의 경우엔 전파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공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성희롱한 남학생들이 유죄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들은 “혹시라도 여러분이 가입한 카톡 단체방에서 누군가 타인을 비방하는 근거 없는 글을 올리면 동조하거나 지켜보지 말고 얼른 그 카톡방에서 나오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한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 일부에선 명예훼손과 모욕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민사 소송으로 해결한다. 한국의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선 유엔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폐지론자들은 진실한 사실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형성하는 데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각종 비리나 부도적한 행위를 저지른 자들이 폭로를 막기 위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악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반면 옹호론자들은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단 헌법재판소는 2021년 2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저자들은 명예훼손과 모욕을 민사로만 다루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도 “돈이 없다”며 버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민사적 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 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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