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마오쩌둥은 외국인에 고급요리 안 줬다

입력 2023-10-13 18:34   수정 2023-10-17 14:05

중국요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이 제국으로서 혹은 국민국가로서 쇠퇴하던 시기에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중국요리의 세계사>는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중국요리의 형성 과정을 살펴본 책이다.

이와마 가즈히로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의 신간이다. 816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으로, 교양서와 학술서 중간 수준의 난도로 쓰였다. 중국요리가 세계로 퍼진 데는 중국인과 화교, 현지 외국인의 몫이 컸다. 근대 청나라 상인들은 조선의 인천 부산 등 항구에 중화요리의 발상지를 꾸렸다. 1945년 이후 한반도 내 중국요리의 주체는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짬뽕이 붉고 매워지고, 짜장면은 검고 달콤해졌다.

국가 차원의 노력은 오히려 빛을 보지 못했다. 1879년 율리시스 그랜트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청나라는 산해진미를 내놓았지만, 그랜트 대통령과 동행한 존 영은 제비집 수프를 “조미가 필요한, 불쾌하지 않은 끈기 있는 음식”으로, 샥스핀 조림을 “기름지고 악취를 풍기는 요리”로 기록했다.

마오쩌둥 집권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급 요리를 대접해도 입에 대지 않는 외국인들을 보고 네 가지 요리와 탕 한 가지를 대접하는 ‘쓰차이이탕’을 국가 연회의 표준으로 삼았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중국식 연회 요리가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중국요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유독 인연이 없다. 2011년 이후 세 차례나 등재에 실패했다. ‘광스카오야’(광둥식 오리구이), ‘원쓰더우푸겅’(청나라 두부 수프) 등 진귀한 요리들을 선보였지만, 중국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습관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탓에 낙방했다.

책은 거듭된 등재 실패의 원인으로 중국 정치권의 알력 다툼과 식문화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지목한다. 입맛에 국경이 없듯, 국가가 나서서 국민 요리를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일까. 저자는 “중국요리는 국가에 의해 체계화된 국민 요리로서가 아니라, 각 지방에서 발달한 민간의 요리로서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사례”라며 “중국요리의 세계적 인식이나 평가를 제고하기 위해선 ‘미식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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