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유튜브 세상' 예언한 '재벌집 막내아들'

입력 2023-11-20 19:29   수정 2023-11-21 00:58


“내 관심은 예술이 아닌 온 세상에 있다.”

다음달 6일 개봉하는 백남준(1932~2006)을 다룬 최초의 기록 영화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의 이런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괴짜 예술가’ ‘미디어아트의 창시자’ 정도의 수식어 안에 가두기엔 그는 너무 큰 존재다.

백남준이 살아 있다면 지금 91세. 60~70년 전 개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유튜브 세상’을 예견한 그는 장르를 넘나들며 세상과 대화했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혁신을 거듭한 실천가였던 그는 지금도 미술계에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놀라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영화는 세 가지 점에서 놀랍다.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바꾼 백남준 영화가 여태 없었다는 점, 그에 대한 기록이 이토록 많이 남았다는 점, 그리고 그에게도 커다란 아픔과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떠돌이 인생
백남준은 ‘재벌집 막내아들’의 원조 격이다. 그가 태어난 1932년, 한국에 캐딜락 자동차가 두 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의 집에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백낙승은 1920년대부터 방직기 1300여 대를 둔 태창방직을 운영했다. 백남준의 창신동 집은 1만㎡(약 3300평)에 달했고, 차 수리공만 10명이었다. 식민시대의 다른 사업가처럼 백남준의 아버지는 일본과 가까웠다. 어린 백남준은 그런 점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평생 부친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백남준에게 아버지는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가족과 담을 쌓고, 외로운 길을 택했다. 1956년 독일로 유학 간 그는 한국을 떠나 30여 년간 고국 땅을 밟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남준이 ‘고독한 괴짜’였던 건 아니다. 영화는 그의 친구와 예술적 동지들을 여럿 다룬다. 작곡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20대 중반 그를 깨어나게 한 미국의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 악기와 몸을 탐구한 작품들을 함께 했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 등이다.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전 세계 20여 명의 아방가르드(전위) 예술가 그룹이 모인 플럭서스그룹을 구성했고, 이들 예술가가 각자 실험적인 예술에 참여하는 운동 ‘글로벌 그루브’(1973)를 만들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도 함께했다. 이 프로젝트는 백남준이 기획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통한 생중계 쇼로 독일, 프랑스, 미국, 한국 등에 송출됐다. 그렇게 백남준은 세계가 인정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유튜브 세상을 예측한 선지자
백남준은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 가난했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었다. 10달러를 후원받아 열흘 치 식량을 샀고, 물 새는 아파트에서 지냈다. ‘TV를 보는 부처’ 등 미디어 아트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났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그가 예견하는 미래와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읽지는 못했다. 그는 “기술에 대한 비판을 위해 기술을 활용한다”며 “미래엔 모두가 자신의 채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백남준이 창조한 세계는 지금 봐도 놀랍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일부가 마비된 마지막 10년 동안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의자와 휠체어에 앉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평생 신문을 읽은 그는 예술은 물론 최신 기술과 마케팅, 주식시장 관련 정보에도 밝았다. “예술가라기보다 혁신가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진실보다 중요한 건 새로운 것이며, 아름다움보다 중요한 것도 새로운 것이다”고 말했다.

영화는 그의 예술적 여정의 시간대별 연대기를 따른다. 뮌헨 뉴욕 서울 등을 오가며 20대부터 말년까지를 전부 담았다. 한국계 미국인 어맨다 킴은 5년간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백남준이 직접 쓴 글들을 독백 형식으로 읽는 목소리는 평소 백남준의 팬이자 그의 가족과도 인연이 깊은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이 맡았다.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은 백남준과 친분이 두터웠던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했다. 에디트 데커 필립스(미술사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아티스트), 데이비드 로스(전 휘트니미술관장), 박서보 화백 등의 인터뷰가 반갑다.

의도적인 편집이나 특수 효과 대신 저해상도 자료와 고해상도 영상을 교차 편집했다. 어쩌면 화려한 그래픽 작업이 애초에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남긴 작품과 그의 삶 그 자체가 파괴적인 예술이었으니.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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