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꼭 보길" vs "'아수라'부터"…영화 두고 연일 격돌 [이슈+]

입력 2023-12-09 17:23   수정 2023-12-09 18:06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서울의 봄'을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더불어민주당)

"같은 감독이 만든 '아수라'부터 보시라고 다시 한번 권해드리고 싶네요."(국민의힘)


1979년 12·12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여야가 '영화'를 놓고 연일 격돌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민생 법안에, 내년도 예산안은 제시간에 처리도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정쟁만 벌이는 모양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역할에는 관심 없고 영화의 인기를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당의 선전·선동을 위해 영화를 오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개봉 14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하고 있다.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벌인 군사 반란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영화를 보고 분노가 느껴질 때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측정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이른바 '심박수 챌린지'도 유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 등 비판에 열을 올리던 민주당은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이런 영화가 나오자 몹시 반색한 분위기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개봉 닷새 만에 관람 소식을 전하면서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총칼 대신 합법의 탈을 썼다. 군부독재와 지금의 검찰 독재는 모습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민 투표를 통해 집권한 현 정권을 군부독재와 동일시한 것이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원외에서도 '서울의 봄'을 통한 '윤석열 정권 악마화'는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서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고 썼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현재가 '불의한 현실'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지난 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북콘서트에서 영화를 언급하면서 "오래전 이야기임에도 인물과 핍박 논리를 바꾸면 2023년 현재 상황 같았다"며 "영화 말미 신군부의 단체 사진에 이어 재판받는 사진이 나오는데 '신검부' 사람들도 심판받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국민의힘도 열을 올려 받아치고 있다. 이들은 '서울의 봄'과 같은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같은 배우 황정민이 주연을 맡은 '아수라'로 반격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서 "'서울의 봄' 전두광과 '아수라'의 안남시장은 이재명과 쌍둥이"라며 "전두환을 보면서도 계속 이재명이 떠올랐다.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자행한 전두환과 대권을 위해 온갖 불법과 범죄를 저지른 이재명은 쌍둥이 같다"고 주장했다. 또 "전두환은 하나회를 배경으로 각종 불법과 무력을 동원해 권력을 잡았다"며 "이재명에게 하나회는 처럼회와 개딸들"이라고도 했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도 지난달 29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서울의 봄'을 언급하는 민주당 인사들을 향해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 '아수라'를 보시라고 다시 한번 권해드리고 싶다. 누가 많이 떠오르지 않냐"며 "자꾸 상대를 몇십년 지난 군사정권과 결부시켜서 악마화하는 것은 나쁜 정치다. 지금 영화를 보고 취하실 게 아니라 국회에서 야당이 야당답게 협치에 나서주길 권하고 싶고, 입만 열면 '탄핵' 하는 분들이 이런 영화나 계엄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다"고 쏘아붙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치권이 '영화의 정치화'에 앞장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예술 영역으로 오롯이 존중받아야 할 영화를 정당의 선전·선동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통화에서 "'공정 세대'라고 할 만큼 불공정에 분노를 느끼는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에 열광하고 있다면, 정치권은 열광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춰 우리 사회의 불공정을 없애는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며 "하지만 역할에는 관심 없고 영화의 인기를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하려고만 하는 것 아닌가.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했다간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이용하는 것을 아주 민감하게 생각한다. 최근 방탄소년단 병역 문제도 정치권이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팬들이 불쾌함을 느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의 '영화의 정치화'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개개인에 따라 논평과 해석은 다양하게 할 수 있겠지만, 집단적으로 마치 여론을 형성하듯 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경미 한국영상콘텐츠학회 회장은 "영화의 지나친 정치화는 영화산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정치인들이 정당의 이념과 가치관, 선전·선동을 위해 영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화를 문화예술로 보고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화인도 정당과 정치인 등 특정 이익집단의 이념화 수단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장단을 맞춰서는 안 될 것 같다"며 "한국의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내부적으로 영화산업은 위축되고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류의 붐이 지속될 수 있으려면 자율성을 보장하고 더 이상 영화를 정치적인 데 이용해선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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