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헌재는 지난달 15일 독일 정부의 올해와 내년 예산이 헌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헌재는 2021년 연립정부가 수립되면서 코로나19 대응에 쓰이지 않은 600억유로를 기후변환기금(KTF)으로 전용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규사업에 투입하기로 한 걸 위헌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KTF를 위한 국채 발행이 불가능해졌다. 독일 내각은 이에 448억유로 규모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해 급한 불을 껐지만, 내년 예산안에서 170억유로 부족분을 어떻게 보충할지를 두고 협상을 벌여왔다.
오랜 협상 끝에 이날 공개된 내년도 예산안에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 및 건설 보조금, 산업 지원 조치 등에 대해 지출을 삭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내년 KTF 지출 계획은 120억유로 삭감되고 주택 소유자에 대한 환경 보조금도 축소된다. 친환경 부문에서의 지출 삭감에 대응하는 조치로 오염 산업군에 할당된 30억유로의 보조금도 함께 깎일 예정이다.
숄츠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소폭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독일 경제에 더 어려운 환경이 닥칠 것”이라고도 했다. 외르크 크뢰머 코메르츠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협상으로 내년 독일 경제성장률에 최대 0.5%포인트의 악영향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독일 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는 만성적인 투자 부족인데, 헌재의 지난 결정으로 국가가 예산 외 자금을 끌어다 투자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철도 운영에 대한 정부 지원도 줄이되 대신 철도망 주변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린트너 재무장관은 “이번 예산안 타결은 독일이 재정 통합 과정에 전념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며 “내년에는 GDP 대비 독일 정부의 재정 적자 비율이 1.5%로 다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재정 적자 비율은 2021년 3.6%까지 치솟은 바 있다. 독일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부채가 가장 작은 국가지만, 2차 세계대전과 통일 과정에서 큰 비용을 쓴 경험이 있어 재정 적자를 예민하게 관리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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