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꼼수와 원칙 사이

입력 2023-12-27 17:57   수정 2023-12-28 00:09

2023년을 마감하며 한 해를 돌아보니 잘 넘기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여전히 잠재돼 있고, 근본적 해결책은 하나도 실행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2024년을 우리는 또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 사회에 산적한 개혁 과제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못한 채 정치권은 매일 싸움박질의 연속이다.

근본이 흔들리니 원칙보다 꼼수와 미봉책이 난무한다. 올해 한국의 출산율은 0.7명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돈을 주고 애를 낳으라고 하지만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 양육과 직장이 양립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급격한 저출생, 고령화 아래에서 국민연금은 조만간 고갈될 것이다. 적게 받고 많이 내는 방법뿐이지만 빙빙 돌려서 몇 가지 시나리오로 숫자놀음만 하고 있다.

이런 저출생을 받아들인다면 한 명 한 명 소중한 자원을 제대로 교육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현재 교육시스템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학에 많이 가라고 반값 등록금을 해놓으니 안 가도 될 인력도 대학에 가고, 없어도 될 대학도 모두 살아남으려고 한다. 정작 양질의 교육은 못 하고 대학은 여전히 후진적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의대 정원을 늘려주겠다니 모두 의대에 가고 싶은 욕망만 자극한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학 진학이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 킬러 문항을 없애면 내가 보는 시험이 쉬워질 것 같은 부푼 희망을 전달하지만 결국 시험은 변별력 싸움이다. 잘 보는 놈과 못 보는 놈을 가릴 수 있어야 공정한 시험이다. 요즘 MZ세대는 열심히 공부해 어려운 시험을 잘 본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사회적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개혁은 온데간데없고 헛된 욕망만 자극할 뿐이다.

더 나아가 노동시장은 여전히 과거형이고 경직적이다. 누구나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모순된 인식을 묘수인 양 포장할 뿐,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구호만 연속 내지른다. 경쟁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누구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좋은 말 잔치로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꼼수들은 끊임없이 늘기만 한다.

모두 서울 시민이 되고 싶다는 욕망의 끝은 김포에서 끝나지 않고 전국을 서울과 비서울로 양분할 기세다. 지방은 가기 싫고 서울에서 저렴한 의식주를 해결하고 싶다는 모순된 욕망을 자극할 뿐이다. 모두가 서울 집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에 정치가 올라탄 격이다.

전기요금 인상 없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탕발림도 마찬가지다. 지리적 한계가 명확한 태양광과 풍력으로는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 추가적인 백업 전원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대량 건설하고 천문학적 비용으로 계통을 연결해야 하므로 결국 전력요금은 올라야 한다. 저렴하게 전기를 쓰면서 친환경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은 상상 속의 유니콘을 꿈꾸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꿈꾸는 현실은 희소한 자원을 얻는 과정이며 결국 내가 지불해야만 끝나는 돈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저급한 욕망을 자극하는 정치는 결국 꼼수이고 누군가는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대안을 묘수처럼 포장하는 시대에 원칙이 사라진 대가를 결국 누군가는 대신 치러야 한다.

2024년에는 꼼수가 결국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그 짐을 후세대가 떠안는다는 점을 명심하고 꼼수가 판치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사회로 진일보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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