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기업 氣 살리기' 공약도 보고싶다

입력 2024-01-22 17:47   수정 2024-01-23 00:48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주던 기업인 이름이 휴대폰 창에 떴다. 반가운 마음에 받았더니, 웬걸. 걱정만 한가득이다. 그것도 ‘세상 쓸데없다’는 나라 걱정으로만.

A씨는 지난주에 나온 두 건의 한국경제신문 기사 때문에 전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18일 게재한 ‘미래 핵심기술 1위, 중국 53 vs 한국 0’과 하루 뒤 보도한 ‘與, 아빠도 한 달 출산휴가…野, 셋째 낳으면 1억 지급’.

전자는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64개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그동안 ‘한 수 아래’로 본 중국과 인도에 크게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는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분석 보고서다. 후자는 여야가 동시에 내놓은 저출생 대책 총선 공약을 비교 분석한 기사였고.

두 기사가 A씨의 머릿속에 하나로 얽히면서 화를 돋운 모양이다. 한국 기업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그저 표에 도움이 될 만한 공약만 내놓고 있으니.

“저출생 대책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장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발표하려면 사전에 기업과 협의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닌가요?”

기사를 찬찬히 읽어 보니, A씨가 폭발할 만한 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업 인력 운용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국민의힘의 ‘유급 아빠 휴가’ 확대(10일→1개월)와 ‘유급 자녀돌봄 휴가’(연 5일) 신설이 그랬다. 아이를 낳으면 현금을 퍼준다는 더불어민주당 공약도 기업인 입장에선 찜찜할 만한 부분이다. A씨는 “매년 28조원이 든다는데,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결국엔 법인세, 소득세 올려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물릴 게 뻔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이 그동안 낸 총선 공약(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온 동네 초등 돌봄, 경로당 주 5일 점심 제공) 재원도 나올 구석은 뻔해 보였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권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쳤지만, 만만한 게 기업이라고 ‘목소리 큰 다수’와 부딪히면 언제나 양보는 기업 몫이었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 들어 기업 친화 정책이 여럿 나왔지만, 법인세와 노동법 같은 큰 물줄기는 바뀐 게 없다.

그렇게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우리 기업들은 해외 라이벌보다 높은 법인세율에, 빡빡한 노동법에, 촘촘한 규제에 시달리며 싸워야 했다. 그사이 산학연정(産學硏政)이 똘똘 뭉친 미국은 저만치 앞서갔고,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ASPI 보고서는 그 결과물이다. AI, 항공우주, 유전공학, 양자컴퓨터 등 64개 분야의 1·2위는 죄다 중국 아니면 미국이다. 한국이 세계 최강인 줄 알았던 슈퍼 콘덴서, 고급 무선주파수 통신, 고성능 컴퓨터에서도 한참 밀렸다.

미국과 중국이 뛸 때 우리는 쉰 탓이다. AI가 그랬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들은 2015년부터 잇따른 인수합병(M&A)으로 ‘AI 블루칩’을 싹쓸이했고, 중국은 같은 해 ‘중국제조 2025’를 시작하며 첨단산업에 돈과 사람을 대거 투입했다. 바로 그 시기에 삼성은 국정농단 수사에 휘말렸다. 최종 결정권자가 없으니, 대형 M&A와 신사업 투자는 올스톱됐다. 그 ‘잃어버린 10년’ 탓에 삼성은 얼마 전 ‘챔피언 벨트’ 2개(반도체 매출 1위·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인텔과 애플에 내줬다.

전문가들은 미·중과의 첨단기술 격차를 다시 좁힐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기업들이 AI와 로봇, 바이오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야 할 때다. 여야의 이번 총선 공약이 ‘기업 기(氣) 살리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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