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마지막 연주라 생각했죠"

입력 2024-01-31 18:51   수정 2024-02-01 00:40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에서 더블베이스로 ‘동양인은 독주에만 강하고 합주는 약하다’는 편견을 깨부순 음악가가 있다. 올해 세계적 명문 악단인 영국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한국인 최초 종신 단원으로 임명되면서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연주자로 떠오른 더블베이시스트 임채문(29)이다. 아시아인이 더블베이스로 이 악단의 단원이 된 건 유례가 없었다. 2022년 독일 안톤 루빈시테인 국제 콩쿠르 더블베이스 부문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지난해 2월 수습 단원으로 들어갔고, 오는 3월부터 런던심포니의 정식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3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런던심포니의 종신 단원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얼떨떨했다”며 “더블베이스 단원 모두가 나를 안아주며 축하한다고 말해줬을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고 했다. “런던심포니의 단원 선발 과정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거든요. 특히 6개월, 12개월 등으로 수습 기간을 따로 정하는 독일, 한국의 악단들과 달리 이 악단은 수습(트라이얼) 기한을 따로 두지 않아 단 이틀 만에 잘릴 수도 있고, 4년간 일해도 임용이 불발될 수 있죠. 그래서 매 순간 마지막 연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임채문은 런던심포니 더블베이스 단원 전원(6명)의 찬성을 받으면서 입단한 경우다. 이 악단은 악기 파트 단원 투표에서 80% 이상 동의를 얻어야만 입단할 수 있다. 그에게 비결을 묻자 “기본기와 순발력”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기술적인 요소들을 수천 번씩 연습해 손에 완전히 익도록 하는 건 기본이었어요. 단원들과 합을 맞출 때면 악단의 색채 변화, 지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뉘앙스 등을 빠르게 파악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데 온전히 집중했죠. 제 전략이 통한 게 얼마 전 악단 관계자가 ‘연주자로서 센스와 재치가 돋보였다’고 귀띔하더라고요. 하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더블베이스를 전공한 임채문은 울산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국립예술대 석사 과정을 마친 인재다. 그간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계약직 단원과 아카데미 단원, 암스테르담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함부르크슈타츠오퍼·도이체라디오필하모니 객원 단원 등을 지내면서 더블베이시스트로서 경력을 탄탄히 쌓아왔다. 현재는 독일 퀼른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임채문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모여 있는 악단인 만큼 연주 때마다 동료들의 훌륭한 실력과 태도에 놀란다고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연주를 잘해요. ‘최선을 다해 소리를 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요. 그 누구도 시키지 않지만, 악보에 적힌 음들을 어떻게 하면 더 생동감 있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계속 의견을 주고받죠. 같은 악보를 수십 번은 봤을 법한 60대 단원조차 그래요. 그에게 이젠 좀 편하게 연주해도 되지 않냐고 묻자 ‘런던심포니의 일원은 그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엄청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녹슬지 않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전 더블베이스가 ‘오케스트라의 엔진’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악단의 맨 뒷줄 구석에 자리하고 소리도 그다지 튀지 않지만, 실제론 관현악 전체의 음향에서 근원적인 소리를 담당하죠. 묵직한 저음으로 오케스트라 울림의 뼈대를 만들고,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하니까요. 일단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습니다. 연주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지금 그보다 제게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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