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처럼 그리고 싶다'는 욕망…고흐를 강박에서 해방시켰다

입력 2024-02-01 17:25   수정 2024-02-02 03:03


1886년 2월의 마지막 날, 고흐는 파리로 향했다. 학적을 두고 있던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왕립미술원을 뒤로한 채였다. 몽마르트르에 있는 동생 테오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는 밝은 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물랑 들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갈레트의 풍차)’가 있다. 같은 제목으로 세 편이나 작업했다.

고흐의 그림은 파리 생활을 전후해 완전히 달라진다. 전에는 주로 어두운 색감과 두꺼운 붓질이 주된 특징이었다면 파리 생활을 시작하면서 밝고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찼다. 전반적으로 생동감이 넘치고 활기찬 느낌을 준다. ‘물랑 들 라 갈레트’ 세 편은 모두 가벼운 색채와 함께 자유로운 고흐를 느끼게 한다.

파리로 온 뒤로 고흐는 얽매이던 스타일에서 벗어났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 가지 방식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은 강박증과 관련이 깊다. 강박증은 개인이 특정 행동이나 자기주장에 신경을 쓰면서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경향을 보인다. 고흐는 그동안 어둡고 두꺼운 붓질이라는 강박 상태에 빠져 있었다.


고흐가 강박증에서 벗어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학의 히스테리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무의식 개념을 발견하고, 그것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히스테리는 원인 불명의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1901~1981)은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히스테리를 건강한 인간의 특징으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히스테리적 인간은 우선 자기 주체성이 타인을 향한 욕망을 억압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 그 주체의 자리에 타인이 다시 들어오게 한다. 억압으로 상실된 욕망을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고흐의 화풍이 바뀐 것은 라캉식 히스테리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흐가 다양한 화가의 기법을 탐구함은 그들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킴은 타인에 대한 욕망을 억압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고흐는 안트베르펜에서 독한 수은으로 치료를 받고 치아의 3분의 1을 마취도 없이 발치하고 난 후 자신을 해골의 모습으로 그렸었다. 그때까지 두꺼운 색으로 묵직하게 칠해야 한다는 강박은 그의 대인관계를 왜곡하고 행동양식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고흐는 테오에게 간절한 편지를 썼다. 파리에 있는 화가 페르낭 코르몽(1845~1924)에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고흐가 당시 파리 예술가들을 열망한 것은 라캉이 말하는 히스테리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 옳다는 유별난 자존심과 강박이 사라지자 놀랄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말은 유연하지만 그동안 사고가 경직됐던 고흐에게 침착과 여유가 생겼다. 강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욕망하는 대상을 받아들인다는 말이고, 그것은 여유롭게 다른 사람의 생각에 유념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제 고흐의 캔버스에는 고흐의 또 다른 고흐들, 그러니까 ‘고흐의 세잔’ ‘고흐의 로트레크’ ‘고흐의 쇠라’ ‘고흐의 시냐크’가 표현되고 있었다.

고흐는 줄곧 색채와 대상, 그림의 완성과 관련해 ‘실재(reality)’를 표현하는 정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흐는 이미 밀레 등을 통해 리얼리즘 화가들이 생각한 그 실재에 많은 관심을 갖고 파리로 이주한 후에도 이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림으로 실재를 완전히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다. 색채에 관한 한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져 거의 준전문가인 고흐는 어떤 색을 사용해도 실재를 쉽게 표현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흐는 색채나 대상, 도구보다는 ‘실재의 표현’에 중점을 뒀다. 인상파나 점묘파의 방식 등 어떤 화풍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실험적인 정신이 돋보인 ‘물랑 들 라 갈레트’를 시작으로 그의 화풍이 변화한 것은 이런 고민과 관련이 있다.

파리에서의 고흐는 자신의 화풍을 내려놓고 동료들의 화풍을 모방하고 흉내 내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했다. 어둡고 무겁게 덧칠로 표현하던 그의 화풍이 밝고 가볍고, 빠른 붓질로 변했다. 하지만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동일한 느낌을 전하는 대신, 고흐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과 삶에 대해 새로운 전환을 경험했다. 이전에는 강박적인 성향으로 주변 환경을 조절하려 했지만, 이제는 타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역할을 인정했다. 그랬더니 강박과 집착이 줄어들면서 고흐의 그림은 거북함과 폭력적인 강렬함이 사라졌다.

우리 모두 자신만을 고집하는 강박의 자식들이다. 고흐가 그랬듯이 실재를 고민하며 자기애적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둡고 칙칙한 감정의 찌꺼기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강박이 없는 그림은 보는 자를 자유롭게 한다.

김동훈 인문학연구소 ‘퓨라파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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