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나를 죽여줘" 안락사에 관한 치밀한 서사

입력 2024-03-03 18:55   수정 2024-03-04 00:44

8년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등에 욕창이 생기고 똥오줌도 혼자서 가리지 못한다. 음식도 삼키지 못해 멀건 죽만 먹는다. 죽음보다 더 죽음 같은 삶이다.

연극 ‘비(Bea)’는 8년째 침대 생활을 하는 주인공 비어트리스(비)의 안락사 과정을 그린다. 원인 모를 만성 체력 저하증에 걸린 그는 어머니 캐서린과 간병인 레이의 도움 없이 움직이지 못한다. 모르핀의 힘을 빌려 고통을 억누르고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낸다.

움직이지 않는 몸과 반대로 비의 의식은 열정적이고 힘이 넘친다. 비의 상상 속 그는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 광란에 빠져 춤을 춘다. 술에 잔뜩 취하기도 하고 섹스도 원한다. 현실은 춤은커녕 혼자 음식도 삼키지 못한다. 옷장을 가득 채운 화려한 드레스와 구두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레이의 도움에도 아무런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비는 죽음을 원한다. 레이를 통해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엄마에게 전하지만 캐서린은 거부한다. 생명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은 딸과의 이별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비의 안락사 요구를 받아들인 캐서린은 자신의 딸의 입에 약과 모르핀을 손수 떠먹여 준다. 수백 개의 약을 삼키면서 힘들어하는 딸에게 ‘할 수 있다’며 응원하는 어머니의 고통이 객석으로 밀려든다.

안락사 과정에서 느끼는 비의 격동적인 심리 묘사가 두드러진다. 열정으로 가득한 비의 내면은 침대 위를 방방 뛰며 환희에 빠진 몸짓으로 그려진다. 반대로 힘 없는 몸에 갇힌 분노와 답답함, 성욕까지 거침없는 언어로 표현된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맹인’이라는 메시지가 신선한 작품. 공연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3월 24일까지.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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