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떨어졌다고 비웃지 마라"…2030 '영끌족'의 항변 [2030 신부동산 공식④]

입력 2024-03-14 13:00  


#. 2021년 집값 급등기 초입에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한 직장인 박모씨(33). 그는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까지 받은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은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한때 금리가 치솟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금리가 하락하면서 한숨을 돌리고 있다. 박씨는 "지난 3년이 30년 같이 느껴진다"며 "솔직히 힘든 순간도 있었고 지금도 녹록지 않지만, 그래도 두 다리 뻗고 맘 편하게 잘 내 집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치솟던 시기. 대출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집을 샀던 2030세대 영끌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높아진 금리와 내려 집값에 남몰래 울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만났던 2030 영끌족들은 현재의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되레 '어려운 시기는 다 지난 것 같다'며 지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수년 새 집값·금리 따라 집안 형편 '롤러코스터'
그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소식은 '전세 사기'와 '저출산 통계'였다. 어려웠지만 2030 영끌족들은 내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계획하거나 낳고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한때 온갖 빚을 끌어모은 영끌족을 향해 '돈에 개념이 없는 젊은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고금리 시대를 몸소 겪으면서 이제는 '알뜰족'이자 '내 집 마련 전도사'로 변모했다.

박씨 또한 '알뜰족'이 된 경우다. 그는 2021년 1월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A 아파트를 7억6700만원에 매수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3억원(연 2.98%, 5년 고정, 35년 만기)과 신용대출 약 1억원 등 가능한 대출을 모두 받아 집을 샀다. 1월 이후 가파르게 오르던 집값은 같은 해 8월 8억700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매수했던 가격보다 1억원이 넘게 올랐다.


하지만 2022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집값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해 12월 6억원까지 내렸다. 빠르게 오른 금리는 집값을 끌어내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집을 샀을 땐 매월 약 170만원이 이자 비용으로 빠져나갔는데, 금리가 오르자 매월 빠져나가는 금액이 200만원까지 불었다. 주담대는 5년 고정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신용 대출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가계를 압박했다.

박씨는 "매달 몇십만원이 더 빠져나갈 때는 정말 힘들었다.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았다. 괜히 당근마켓(중고거래 플랫폼)의 매너온도가 높은 게 아니다. 작년부터는 한숨 돌리게 됐는데 예전에 비하면 정말 살만해졌다"고 말했다. A아파트는 7억원대까지 올랐고 금리도 안정화되면서 이자 비용이 20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다시 줄었다. 매달 나가는 돈이 몇 년 만에 같아진 셈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 새 박씨 가족의 소비 습관이 '절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연봉이 늘어나는 동안 지출이 줄면서 박씨는 신용대출을 조기 상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직장인 이모씨(31)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2020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전용 84㎡ 아파트를 7억3000만원에 샀다. 이씨는 집을 살 때 연 2.7% 주담대(혼합형) 3억원과 회사 사내 대출 1억5000만원을 받았다. 매달 원리금으로 빠지는 돈은 190만원에 달했다.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없었다.

금리가 더 치솟으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2022년 말 최초의 두 배가 넘는 연 6.5%까지 올랐다.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도 270만원대로 늘면서 적자 생활이 시작됐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지나 이씨에게도 희망이 찾아왔다.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면서 금리가 연 4.4%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씨는 "한 때는 남들 집 살 때 뒤늦게 사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싶었다"며 "2~3년 새 경제, 금융, 대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줘서 숨구멍이 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없는 것보다 낫다"
2030 영끌족들은 대출 금리가 오르내릴 때마다 반찬 수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등 빠듯한 현실을 살아왔다. 동시에 이들은 '내 집 마련'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어려운 현실을 마주할 때 주변에서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다는 데에는 한목소리였다. 부모님을 비롯해 회사 동료, 동창, 이성 친구 등까지 내 집에 대해 쉽게 얘기했다는 것. 아무래도 2030세대들은 무주택과 유주택, 기혼과 미혼 등이 골고루 분포됐다 보니 '내 집 마련' 자체가 얘기 소재일 뿐이었다는 설명이다.

2022년 집을 구입했다는 유씨(37)는 몇 년 새 친구들을 정리했다. 그는 "집을 사고 집값이 올랐을 때는 무슨 로또라도 된 것처 몇몇 친구들이 추켜세웠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내려가니 친구라는 애들이 '영끌해서 힘들어 어쩌겠냐'면서 창피를 주더라. 내가 내 돈 내면서 이자 감수하겠다는데 부모 집에 얹혀살거나 전·월세사는 친구들이 그러니까 할 말이 없더라. 한 친구가 전세 사기 당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는데 이미 정 떨어졌다 보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집이 없을 땐 집값이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며 "아마 집을 사지 않았다면 지금도 시장 상황을 관망하면서 집을 사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도 멋 모를 때 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집을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고민만 많은 무주택자는 평생 무주택자로 남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에 사는 최모씨(31)는 2022년 결혼과 동시에 내 집 마련을 했다. 그는 "실거주 목적도 있었지만 투자 목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집을 샀을 때보다는 가격이 내려 씁쓸한 게 사실이지만 신축에 역세권, 국민평형(전용 84㎡)이라는 점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최근에 아기까지 생기다 보니 집에 대한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양쪽 부모님이 결혼 당시에는 대출 때문에 고생할 걸 아니까 '굳이 집을 사야겠냐'며 만류하셨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대출받고 임신도 하게 되니 '집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축복해주셨다"며 "내 집이라는 안정된 환경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래도 생각하고 식구도 늘려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올해 디딤돌 대출에서 신생아특례대출로 갈아탈 계획이다. 줄어든 이자비용은 자연스럽게 태어날 아이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한편 무주택자들의 주거 안정성은 다시 악화하고 있다. 먼저 최근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4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3% 오르면서 지난주(0.02%)에 비해 상승 폭이 다소 커졌다. 지역별로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0.06%→0.08%)과 서울(0.05%→0.08%)은 상승 폭이 확대됐다.

월세도 가파르게 뛰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2021년 6월=100)는 지난해 7월 101에서 지난 1월 102.5로 6개월 연속 올랐다. 서울 아파트 월세 중 100만원이 넘어가는 비중도 34.5%로 작년(31.7%)보다 늘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100만 원 이상 월세 비중이 약 52%에 달했다.

임대차 매물도 줄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 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 전·월세 물량은 5만1263건(전세 3만2705건, 월세 1만85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5130건(전세 48159건, 월세 2만6971건)보다 46.55% 줄어들었다. 경기, 인천 등도 30%대로 하락했고 전북, 울산, 대전 등 주요 대도시 전·월세 물건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 한경닷컴은 심층기획 2편 '2030 신부동산공식'을 총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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