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에 문 두드리는 그들… 더 치열해진 '수박 돌리기'

입력 2024-03-26 15:44   수정 2024-03-26 18:28

이 기사는 03월 26일 15:4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 로코모티브에 3월은 '행복한 지옥'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거리가 쏟아져서다. 전직 보험·카드 영업 직원 등으로 꾸린 '외인부대'가 의결권을 위임 받기 위해 전국의 주주들을 찾아다닌다.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고, "주가가 왜 이 모양이냐"는 애꿎은 질타를 받기도 한다. 이태성 로코모티브 대표는 "의결권 받기 위해선 삼고초려는 기본"이라며 "분쟁 중인 기업이 늘어 올해는 작년보다 설득해야 할 주주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 늘자 의결권 위임 대행업 호황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기 주총 시즌을 앞두고 지난달 26일부터 이날까지 최근 한 달간 올라온 '소송 등의 제기·신청(경영권 분쟁 소송)' 공시는 8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56건) 대비 44.6% 급증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게 경영권 분쟁 증가로 이어졌다. 삼성물산과 JB금융지주, KT&G 등이 대표적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곳이다. 올해는 가족이나 공동 창업자 간 경영권 분쟁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고려아연과 금호석유화학 등이 분쟁을 겪었고, 한미사이언스도 주총 표대결을 앞두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이는 기업이 늘어나자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들은 호황을 맞았다. 이들은 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주총 결의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의결권을 위임받는 역할을 한다. 업계에선 의결권을 위임받는 작업을 '수박을 돌린다'고 표현한다. 2015년 한 회사 직원들이 계열사 간 합병안 통과를 위해 수박을 들고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해당 사안의 당위성을 설득한 데서 비롯된 은어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는 5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거세진 데다 2017년 섀도보팅 제도가 폐지되면서 의결권 위임 대행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최근에는 업체들의 성격도 세분화·전문화하는 분위기다. 비사이드코리아와 헤이홀더, 액트 등은 주로 소액주주와 행동주의펀드의 의결권 위임을 대행한다. 로코모티브와 지오파트너스 등은 기업 측의 일을 돕는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기업 측의 의결권 위임을 돕던 업체가 내년에 행동주의펀드 편에 붙으면 주주명부 노출 등의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며 "각 업체마다 전문 분야를 확립해나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위임 대행 경쟁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경영권 분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만큼 의결권 위임 대행 경쟁이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불쑥 집으로 찾아오는 대행업체 직원들 때문에 당황하는 주주들도 적지 않다.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한 한 주주는 "밤늦은 시간에 대행업체에서 찾아와 다짜고짜 문을 두드려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주주는 "민감한 개인정보인 집 주소를 얼굴도 모르는 대행업체 직원이 알고 있다는 점이 께름칙하다"고 토로했다. 주주명부에는 주주의 이름과 소유주식 수, 집 주소 등이 적혀 있다. 회사 측은 물론 소액주주도 주주명부 열람권을 갖고 있다. 이 명부를 받아 대행업체에 맡겨 의결권을 위임받는 건 불법이 아니다. 다만 일각에선 무분별한 주주명부 열람 청구가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행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업체들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어둠의 경로'로 주주들의 전화번호까지 입수해 전화로 주주를 설득하는 업체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정상적인 방법까지 동원되자 업체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 관계자는 "밤 9시 이후에는 가정 방문을 금지한다든지, 주주의 개인 전화번호를 불법으로 입수해 연락하면 처벌을 하는 등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관/하지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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