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정부 지원 및 후원금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수입으로 운영을 안정화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매출 중 입장료 비중은 13.8%로 전년(10.3%) 대비 3.5%포인트 늘었다. MoMA(14.5%), 휘트니미술관(11.2%), 오르세미술관(38%) 등 주요 미술관도 10%를 웃도는 입장료 수입 비중을 기록했다.
입장료를 높여 얻은 수입은 미술관과 박물관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자금으로 재투입됐다. 입장료를 15유로로 올린 퐁피두센터는 2022년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진 자료 1200여 점, 미국 화가 마샤 하피프 회화 등을 소장했다.
팬데믹 이후 위축됐던 신규 컬렉션 확보 열기도 재점화하는 분위기다.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는 지난 3년간 다양성을 테마로 LGBT, 디아스포라, 제3세계 작가 등 현대예술 작품 약 1000점을 입도선매했다. 지난해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스위스 작가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회화를 포함해 신규 소장품 구입에만 837만8000파운드(약 143억3157만원)를 쏟아부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의 기형적인 세입·세출 구조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22년 세출은 2017억원으로, 주요 사업비 1546억원, 인건비 453억원 등이 투입됐다. 같은 기간 박물관이 벌어들인 수입은 35억8700만원에 불과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2년 수입은 약 6억5800만원으로 연간 지출 154억원의 3%에 불과했다. 소장품 구입에 쓴 돈은 13억원.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출한 비용은 약 685억5300만원. 700억원에 달하는 세출을 충당할 입장료 수입은 13억2230만원에 불과했다. 인건비로 연간 110억7800만원이 빠져나가는데, 소장품 구입비는 10년째 40억~60억원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블록버스터급 명화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는 길도 꽉 막혀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등 유명 화가들의 명작으로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려면 미술관과 갤러리, 개인 소장자들이 보유한 소장품을 한 장소로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 임차료, 항공 운송료, 보험료와 유지 보수 비용 등 최소 50억~1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기본적인 입장료 수익을 확보할 수 없으니 국내에서 열리는 유명 화가 전시장엔 진짜 그림은 몇 점뿐이고 포스터나 레플리카(복제그림)로 도배해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소외 계층과 청소년 등을 위한 문화 복지 혜택과 일반 관람객, 외국인 관람객에 대한 입장료 차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술계 관계자는 “국내 관람객의 문화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뛰어넘은 지 오래인데, 허접한 전시만 판치는 꼴”이라며 “1년에 서너 번 오직 전시 관람을 위해 도쿄에 다녀온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의 탄탄한 재정은 국가의 소프트 파워로 이어진다. 해외 경매 시장과 아트페어 등에서 적극적으로 소장품을 사들이고 수준 높은 전시를 지속적으로 열면 국내는 물론 해외 관람객까지 빨아들이는 관광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퐁피두와 루브르, 미국 구겐하임 등은 이미 예술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브랜드가 돼 중동과 아시아, 유럽, 미주 등 국경을 넘어 글로벌 분점을 내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안시욱/김보라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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