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아들, 美 유학 보냈더니…2억 버는 부부도 허리 휜다 [대치동 이야기⑦]

입력 2024-05-27 09:00   수정 2024-06-03 09:50


※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매주 월요일 대치동 교육 현실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이를 미국 보딩스쿨 보내는 데 연 1억원 넘게 듭니다. 허리가 휘어질 것 같지만 아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후회가 없습니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전문직 맞벌이 부부는 작년 초 아들 A군(16세)을 미국 보딩스쿨에 유학 보냈다. 부부 합산 세후 수입이 약 2억원에 달함에도 비용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자녀를 유학 보낸 것을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부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였던 A군이 미국 학교에 입학한 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위권 성적으로 학교장 상을 수상하고, 수학 과목에서 두 학년을 월반한 이후 수학과 과학에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은 미국에서의 ‘성공 지름길’로 통하는 STEM(Sceince·Technology·Engineering·Mathmatics) 관련 전공으로 명문대 입학을 노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언감생심이었던 모습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대치동 학부모들이 있다. 국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최고의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조기유학이 성공하면 미국 명문대 입학과 초봉 연 1억 이상이 가능한 현지 취업을 노려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상류층 특권' 된 조기유학
미국의 사립고는 보딩스쿨과 데이스쿨로 나뉜다. 보딩스쿨은 전교생이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교, 데이스쿨은 등·하교를 하는 학교다. 미국은 가디언(보호자) 비자 제도가 없어, 데이스쿨을 보내는 경우 부모가 따라가지 못하고 현지 홈스테이를 별도로 구해야 한다. 한국인 관리형 홈스테이의 비용은 약 연 5000만원이다.

보딩스쿨은 9학년 이전 학제가 있는 ‘주니어 보딩스쿨’과 10~12학년으로 구성된 ‘일반 보딩스쿨’로 구분된다, 대치동에서 미국 유학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유학원들은 가장 적당한 유학 시작 시기는 7~8학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기준으로 중학교 1~2학년이다.

마이클최 힙스어학원 원장은 “대학에 갈 때 내신 성적이 9학년 성적부터 반영되는데, 성적 반영 시기보다 한 두 해 미리 가 현지 공부에 적응해야 좋은 내신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기유학은 지난 2006년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인 감소세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학생 1만 명당 유학생 수는 2022년 기준 초등학생 11.7명, 중학생 12.7명, 고등학생 5.6명으로 집계됐다. 2006년 각각 35.2명, 44.6명, 36.3명이었던 데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부담이다. 대치동의 한 유학원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조기유학에 들어가는 비용은 보딩스쿨 기준 등록금 연 5만~6만 달러, 식비·기숙사비 연 1만 달러다. 총 7만 달러로 한화 기준 약 1억원에 달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유학을 시작할 경우 대학 입학 전까지만 약 6억원을 쓰는 셈이다.

국내에 다양한 대안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외국어학교, 국제학교, 대안학교 등에서도 영어를 교육하고 미국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치동을 포함한 강남권 학부모들이 여전히 보딩스쿨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아이비리그 등 미국 명문대를 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미국 입시에서는 출신 고등학교의 명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하버드는 1년에 약 2000명의 정원을 모집한다. 여기에 전세계에서 5만~6만명이 몰려든다. 정량적 스펙만으로 당락을 구분짓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때 학교는 해당 고등학교 출신 입학생들의 진학 후 성적을 살펴본다, 노골적으로 명문고 출신들을 뽑는 경향이 강하다.

국내 재벌가 자제들 역시 이 ‘명문 코스’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딸은 명문 주니어 보딩스쿨인 ‘초트 로즈메리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두 아들은 ‘세인트 폴 스쿨’,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자녀는 ‘그로튼 스쿨’을 졸업했다.

보딩스쿨로 가는 길
경제적 여유만으로 진학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는 약 380개의 보딩스쿨이 있다. 이 중 밀리터리 스쿨, 아트 보딩스쿨, 마운틴 스쿨 등 특화된 학교를 제외하고 대학 입시를 위해 진학할 만한 보딩스쿨(칼리지 프렙 스쿨)은 약 80개다.

여기서도 상위 20~30위권 안에 드는 좋은 보딩스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학 시험인 SSAT(Secondary School Admission Test·미국 사립 학교 입학시험)를 응시해야 한다. 사립학교 입학을 위해 학생의 전반적인 영어 능력과 수학 실력 등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한국에서는 1, 3, 4, 11, 12월 연 5회 정규시험이 열린다. 이 시험을 위해 학생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2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다.

이 외에도 양호한 내신 성적이 필요하고, 봉사활동 등 비교과 활동도 준비해야 한다. 비교과 활동의 경우 국내 유학원에서 컨설팅해주는 경우가 많다. 또 학교에 따라서는 학부모 인터뷰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

미국 보딩스쿨 진학 후에도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즉시 귀국한다. 미국보다 더 잘 가르친다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국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대학 입시 전 방학은 이들에게 중요한 기간이다. 한국에 들어와 평소 어려웠던 과목에 대한 보충 공부를 하거나 비교과 활동을 해야 한다.
부적응·일탈로 실패하는 경우도
모든 조기유학이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조기유학 실패 사례도 많다. 한 유학원 원장은 “실제로 미국 명문대학 입학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성공 케이스는 절반 이하”라며 “한국 학교에서도 내신이 최상위권이었거나 영어가 유창한 학생 외에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적응의 문제가 가장 크다. 특히 사춘기가 온 학생은 현지 적응과 언어 학습을 대체로 어려워한다. 나이가 올라갈수록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비중이 높아져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부모의 감시가 어려운 만큼 마약 등 심각한 일탈에 연루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조기유학을 중단하고 국내에 돌아와도 극복은 어렵다. 중학교 고학년~고등학교 시기에 한국에 복귀한 경우 국내 대입 준비에 다시 열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고등 2학년 아들을 한국으로 귀국시킨 학부모 B씨는 “아이의 부적응 문제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입시에 있어 이도 저도 아니게 돼 더 막막했다”며 “조기유학을 고민할 때는 자녀의 영어 수준, 적응 능력, 자기주도성 등을 냉철하게 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에도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도 심화하고 있습니다. 다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은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대치동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해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대치동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스템을 모르면 한국 교육의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치동이 어디인지, 대치동의 왕좌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학부모, 강사들의 삶은 어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치동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거나 포털에서 [대치동 이야기]로 검색하면 더 많은 교육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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