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가 성희롱 피해자에게 유급휴가 1.5개월과 상병휴직 9개월을 승인해주고 가해자들과 충분히 분리 조치를 했다면 법적 의무를 다한 것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해 근로자가 추가 유급휴가를 요청했다고 반드시 줘야할 의무는 없다는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는 최근 건설업계 한 대기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시정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중노위의 판정을 뒤집었다.
신고 직후 재택근무를 부여한 회사는 A의 요청에 따라 이듬해 1월 31일까지 한 달 반에 걸쳐 유급휴가를 부여했다. 유급휴가가 끝날 무렵 A가 추가 유급휴가를 신청했지만 회사는 "가해자의 부서 이동 조치가 완료된 이상 유급 휴가를 종료하고 출근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A는 온라인으로 '직장 내 성희롱에 따른 스트레스'를 이유로 한 '상병 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2월부터 3개월 동안 기본급의 절반을 지급하는 상병휴직을 부여했다. 하지만 3개월의 상병 휴직 기간이 끝날 때쯤 A는 또다시 유급휴가를 요구했고, 이를 회사가 반려하자 상병휴직을 또 3개월 사용했다. 두 번째 상병 휴가가 종료하는 7월경 또 유급휴가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이번엔 3개월 '무급' 상병휴직을 썼다. 유급휴가 1.5개월, 유급 상병휴직 6개월, 무급 상병휴직 3개월로 총 10.5개월을 쉰 셈이다.
추가유급휴가를 거부당한 A는 회사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며 노동위원회로 향했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 4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중앙노동위가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정하고 차별 시정을 요구하자 회사가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이어 "피해근로자가 특정 보호조치를 요청하더라도 사업주는 업무상 필요성 등을 고려해 그 보호조치 내용·기간을 정할 수 있다"며 "유급휴가는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의 일환이므로, 다른 조치로 보호를 달성할 수 있다면 유급휴가를 주지 않아도 조치가 부적절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또 "회사는 성희롱 신고가 있자마자 재택근무를 허락했고, 1.5개월의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A의 복귀시기에 맞춰 가해자 징계와 근무 장소 분리를 마쳤고, 피해자가 복귀하기 어렵다고 하자 월급의 50%를 지급하는 상병휴직 6개월과 무급 상병휴직 3개월을 승인해줬다"며 "이런 조치가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법률에서 괴롭힘·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유급휴가 부여 기간은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하는 추세지만 반드시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조치해야 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신고 건수는 지난 2019년 1345건에서 2020년 1608건, 2021년 1576건, 2022년 1589건, 2023년 1875건으로 증가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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