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한때 국내 ‘패션 1번지’였던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과거 가장 임대료가 높았을 입구 매장부터 비어 있었다.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쇼핑 상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동대문 상가건물 32곳 중 3분의 1 이상은 공실률이 두 자릿수에 이른다. 하지만 뒤이어 찾아간 인근 현대시티타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의류 도·소매업체와 창고가 있던 공간은 패션 디자이너 사무소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에선 패션 디자이너, 창업가, 젊은 모델, 사진사들이 복작대며 24시간 꿈을 디자인하고 있다.
시대 흐름의 변화 속에서 동대문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빈 상가를 패션 공유 오피스가 채우기 시작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입점해 디자인·생산·유통 전 과정의 기획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 스튜디오 1·2호, 카페24, 스파크플러스, 서울패션허브, 패션큐브 등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19일 밀리오레 7층에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제2캠퍼스’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무신사는 10일 동대문종합시장 4층에 동대문의 두 번째 무신사 스튜디오를 열었다. 한 의류업체가 빈 상가 공간을 창고로 쓰던 곳이다. 1~3층에는 대부분 50~70대 상인들이 의류 원자재 등을 취급한다. 이들 상인도 젊은이가 늘어나는 걸 환영하는 분위기다. 1층에 있는 60대 원부자재 상인은 “20대 젊은이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인근 분위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탄생하는 ‘스몰 브랜드’는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고 고유의 디자인 콘셉트를 보유한 것이 특징이다. C커머스(중국 e커머스)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지닌다는 평가다. 대중적인 브랜드들과 달리 고유 ‘팬덤’을 형성하며 성장한다. 최근 K패션으로 각광받는 디자이너 브랜드 ‘마뗑킴’이 대표적 사례다.
무신사가 2018년 만든 무신사 스튜디오 1호점은 브랜드 산실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입점한 ‘2000아카이브스’는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뉴진스, 에스파, 르세라핌 등 걸그룹이 찾는 브랜드로 입소문이 났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인기가 높다. ‘가든익스프레스’는 자연을 담은 색감을 디자인에 풀어낸 브랜드다. 코오롱 출신 디자이너가 퇴사 후 동대문에서 창업해 주요 패션 플랫폼에서 많이 찾는 브랜드가 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20대 디자이너와 60대 원자재 상인이 함께 일하는 이색 풍경이 동대문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동대문을 기반으로 탄생한 패션 브랜드들이 K패션을 주도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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