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전문가 사이에서는 미국 시장지수, 기술 개별주에 대해 속속 저가 매수론이 올라오고 있다. 이미 주가가 밀려날 만큼 밀린 데다, 관세 정책으로 인한 우려가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진단이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반도체, 전자제품에 보편관세가 유예됐고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며 "만약 이렇게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낮추기 위한 조치들이 시행된다면, 현재 기관 투자자들의 포지션은 과도하게 보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몇 달 동안 자동차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할 거라고 전망한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의 발언과 같이, 관세가 즉각 소비 수요를 위축시킬 정도로 가격에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감세안이 속도를 내면서 관세 정책의 유연성이 높아질 가능성을 감안하면 미국 증시의 추가 급락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뉴욕증시 주요지수가 추가로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적은 만큼, 조금씩 저가 매수에 나설 타이밍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상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저점을 5000선으로 잡고, 이 수준을 밑돌면 가격 조정은 끝났다고 판단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먼저 협상 의지를 비친 국가들에 상대적 혜택을 줬단 점에서, 지수가 5000선에서 더 밀려 가격이 조정받을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간밤 S&P500 지수는 120.93포인트(2.24%) 떨어진 5275.70에 장을 마쳤다.
한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주가가 흔들렸지만, 과거 약세장과 다를 게 없다. 기축통화는 국력이 정한다"며 "인구구조와 에너지·식량 자급자족, 국방력과 지리적 요건 등을 감안하면 미국의 우위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부터 미국 주식의 비중을 적립식으로 늘려갈 것을 권했다.
황지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투자심리가 얼마나 과민반응하는지 포착할 수 있는 보조지표 '상대강도지수'(RSI)를 활용해 보면, 현재 S&P500 지수의 RSI는 한때 30 이하까지 밀리며 과매도 구간에 들어섰지만, 최근 기술적 반등이 생겨 지금은 40 이상 구간까지 회복됐다"며 "이는 단기적으로 과매도가 해소되는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시장에 투자할 것인지, 개별 종목 단위로 투자할 것인지를 두고서는 낙관론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황지연 연구원은 "현재 S&P500지수의 RSI도 40 이상으로 높아진 만큼 지수에 새로 진입할 매력은 생겼지만, 아직은 전략적으로 볼 때 이른 타이밍으로 보인다"며 "지수 투자보다는 개별 종목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더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헬스케어 업종 기업들을 권했다. 최근 이 업종의 과매도 현상은 구조적 펀더멘털 악화보다는 외부 변수로 인한 일시적 조정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 11일 기준 RSI가 30 이하인 과매도 구간 종목 중 70% 이상이 헬스케어 종목들이었다"며 "화이자를 비롯한 개별 헬스케어 주식들에 단기 반발 매수세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한상희 연구원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 저가 매수를 추천했다. 지수는 간밤 516.01포인트(3.07%) 하락한 1만6307.16에 거래를 마쳤는데, 한 연구원은 1만6000선 미만에서 나스닥 지수는 특히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S&P500 대비 나스닥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2배로 2013년 이후 밴드(예상범위)의 최저치 수준"이라며 "나스닥의 상대적 매력이 부각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미국 주식, 그 중에서도 기술주 비중을 줄여가고 있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발(發) 고강도 관세 정책으로 미국 국가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란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4월 월간 '글로벌 펀드매니저 대상 설문조사'(4월 4~10일 진행) 결과에 따르면 '미국 주식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지'의 물음에 "확대하고 있다"는 응답과 "축소했다"는 응답 간 차이가 36%포인트였다.
이는 2023년 5월 이후 최저치다. 미국 주식 비중 확대에 대한 응답비율의 차가 줄어들었단 것은, 그만큼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에 대해 명확한 방향성을 못 잡고 있단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최근 두 달 사이 두 응답 간 격차를 나타내는 비율은 설문이 시작된 이래 감소폭이 가장 컸던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미국 주식 수익 전망을 긍정하는 응답비율과 부정하는 응답비율의 차는 2007년 11월 이후 최저치로 급락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기관 투자자들은 대체로 기술 업종에 대한 비중을 크게 줄이고 그 공간을 유틸리티와 필수소비재, 헬스케어 등 방어 업종으로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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