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작전
“날이 더워서 수박도 잘 안 나오나 보죠?”
수박 가격이 심상치 않다. 2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수박(상품) 1개 소매가격은 3만866원으로 나타났다. 전년(2만1336원) 대비 44.7%, 평년(2만1021원) 대비 46.8% 뛴 값이다. 작년엔 사과와 배추가 말썽이더니, 올여름엔 수박이 복병으로 떠올랐다.
수박 한 통의 '몸값'이 3만원을 넘는 경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월평균으로 보면, 작년엔 8월 3만243원으로 전월(2만2300원)대비 35.6% 급상승하면서 3만원대를 돌파했다. 재작년인 2023년에도 7월 2만2187원에서 8월 2만8516원으로 한 달 새 28.5% 오르면서 3만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올해처럼 7월부터 수박 한 통에 3만원을 넘나드는 해는 찾기 어렵다. 최근 10년간 수박 1개의 7월 평년 가격은 1만9041원이다.
소비자들 가운데 “날씨가 너무 더워 수박 농사가 잘 안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엄밀히 말하면 그 반대다. 지금 시중에 풀린 수박은 지난 5~6월에 비대기(과실이 굵어지는 시기)를 보낸 제품들인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수박 주산지인 충북 충주(음성 인근)와 강원 인제(양구 인근) 등 수박 주산지에서 이 시기 평균기온은 최근 10년보다 낮았다.
기온보다 일조량이 문제였다. 충북 충주의 올 5~6월 일조시간은 389시간으로, 과거 10년 평균(474시간)보다 85시간 적었다. 강원 인제(양구 인근)도 같은 기간 일조시간이 270시간에 불과했다. 10년 평균(432시간)의 62.5% 수준이다. 일조량이 줄다보니 과실이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통’ 단위로 보면, 올해 수박 출하량이 과거보다 크게 적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일조량 부족으로 8㎏ 이상 ‘큰 수박’이 줄어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수박 가격은 8㎏ 이상 제품을 기준으로 조사되는데, 이런 물량이 귀해졌다는 의미다.
물론 폭염의 영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더위는 공급보다는 수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른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일찍 시작하면서 수박 수요도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수박은 통상적으로 삼계탕집 등 식당에서 초복(올해는 7월 20일)을 앞두고 많이 사들여 수요가 급격히 불어난다. 자영업자들과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시기가 겹치면서 수박값이 껑충 뛴 것으로 분석된다.
농식품부는 초복이 지나고 출하 지역이 넓어지면서 수박 가격도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 ‘농작물 생산조사’에 따르면 2023년 생산된 수박은 총 46만5117t이다. 지역별로 보면 충남이 25.7%(11만9734t)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전북 23%(10만6972t) 경남 14.5%(6만7304t) 충북 12.7%(5만9302t) 순이었다. 수박은 상대적으로 출하 지역이 고르게 분포돼있고, 출하 시기도 겹치지 않는 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달 하순부터 강원 양구와 경북 봉화를 중심으로 수박이 본격 출하되면 소비자 가격도 조금은 누그러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했다.
단 최근 집중호우는 변수다. 수박은 수분 함유량이 많은 과채류인 만큼 비가 많이 와도 타격이 덜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진 않다. 노지 수박의 경우 비가 많이 오면 물을 타고 토양에 있는 병균이 올라와 역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설 수박은 상대적으로 병에 걸릴 확률은 낮지만, 수분을 너무 많이 흡수하면 당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땅은 서로 다 연결돼있기 때문에, 노지와 시설 작물의 생육 환경이 완전히 분리돼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침수가 일어날 정도로 농지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보면 아예 수박이 '질식사'할 수도 있다. 전라북도 농업기술원 과채류연구소(수박시험장)의 정주형 농업연구사는 “수박은 토양에 있는 공간을 바탕으로 뿌리가 숨을 쉬면서 생육하는데, 물이 가득 차면 숨구멍이 막혀 금방 시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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