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총 4500억달러(약 625조원)에 달하는 투자펀드 및 에너지 구매 카드를 앞세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당장 8월 1일부터 부과되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품목 관세를 15%로 낮췄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고기와 쌀 시장 개방도 막아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 계속 제품을 팔기 위한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625조원은 올해 국가 총지출액인 702조원의 89%, 지난해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1조7903억달러)의 25%에 해당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대미 관세 협상 브리핑에서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에 부과하기로 예고한 상호관세는 15%로 낮아지고,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15%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추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다른 나라 대비 불리하지 않은 ‘최혜국 대우’를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 대가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펀드’를 약속했다. 미국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을 위한 투자·대출·보증으로 앞서 협상을 타결한 일본과 비슷한 형식이라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그는 “반도체와 원전, 2차전지, 바이오 등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서 미국 진출을 돕는 펀드”라며 “일본의 대미 투자펀드(5500억달러)를 정밀히 분석해 (한국의 대미 투자펀드에서) 안전장치를 훨씬 더 많이 포함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막판 협상에선 미국 조선업 부흥(MASGA)을 위한 1500억달러 펀드를 제시했고, 미국을 설득하는 데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 펀드는 미국 내 선박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해 우리 기업 수요에 기반해 (미국에) 투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 4500억달러의 ‘입장료’가 과도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우리 조선사가 주로 참여하는 조선업 펀드 1500억달러와 필수 에너지 구매 1000억달러를 제외한 대미 투자펀드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 수준”이라고 했다.
일본과 달리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약속은 이번 합의엔 직접 포함되지 않았지만 추후 논의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북극 (개발) 등 전략적 부분이 있으므로 상업성을 평가할 데이터를 미국 측에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자동차 관세율의 경우 한국은 12.5%를 주장했으나 미국은 모든 국가에 적용하는 ‘15% 일괄관세’를 고수했다. 김 실장은 “일본이 기존 관세 2.5%를 더해 15%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0% 관세를 적용받던 한국은 12.5%로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도 “미국 측의 (15% 고수) 의지가 완강했다”고 설명했다.
철강·알루미늄에 매기는 품목관세 50%는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의 ‘레드라인’(협상 불가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성혁 대통령실 산업비서관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논의 대상이 아니었고, 파생상품 관세도 철강·알루미늄 비중에 따라 부과된다”고 했다.
비관세 장벽에 해당하는 농산물 검역 절차, 자동차 안전 기준 문제는 미국과 추가 협상해야 할 부분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과채류와 관련한 한국 검역 절차를 문의하며 관심을 나타냈다”며 “검역 절차 개선과 자동차 안전 기준 등을 포함해 기술적 사항에 대해 미국과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김대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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