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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입력 2025-08-15 17:03   수정 2025-08-16 00:34

나의 무언가를 타인으로부터 점수로 평가받는 건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때론 잔인한 일이기도 하다. 직장인에게는 상사의 인사 고과가 그렇겠고, 자영업자에겐 손님의 별점이 비슷하겠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점수가 하나 더 있다. ‘개인 신용점수’다. 신용평가라는 사업은 1800년대 미국에서 탄생했다. 현금 거래를 고집하던 루이스 태펀이라는 섬유 판매상이 ‘다른 상인들의 신뢰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정보를 축적하다가 1841년 차린 신용평가 회사가 시초다. 가장 성공한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1900년 설립됐다. 미국 최초로 200여 개 철도채권에 신용등급을 매겼는데, 무디스가 우량하다고 평가한 기업은 대공황 때 전부 살아남은 덕에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1985년 기업 대상 신용평가가 먼저 도입됐다.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재앙이 역설적으로 신용평가 시장을 키운 계기가 됐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신용평가는 카드 사태가 온 나라를 집어삼킨 2003년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이전까진 연체를 금액과 기간에 따라 주의, 황색, 적색 정도로 단순하게 분류했다. 하지만 이때부턴 1점부터 1000점까지 세분화한 점수를 통해 개인별 상환 능력을 한층 정밀하게 평가하게 됐다.


‘저 사람에게 돈 빌려줘도 괜찮은가’를 판단하는 작업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호기롭게 뛰어들었다가 피를 본 핀테크 기업이 적지 않다. 대학생을 겨냥해 50만원 소액 대출을 운영하던 A사 대표는 “분명 성실해 보였는데 연락 끊고 군대 가버리는 학생이 그렇게나 많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 파일러(thin filer)에게 30만원 신용구매 한도를 내줬던 네이버와 카카오도 상상 이상의 연체율을 받아들었다. 신용점수를 앞서는 대안은 아직까진 없는 셈이다.

그런데 금융권에서 “개인 신용점수, 이젠 못 믿겠다”는 말이 적잖이 나온다고 한다.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 때문에 변별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NICE평가정보에서는 46.9%,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서는 44.2%가 900점을 넘었다(지난해 말 기준). 국민 절반이 최상위 등급인 것이다. 금융권 싱크탱크들은 그 원인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여러 번 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국민들이 과거보다 신용 관리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는 내 신용점수를 확인하려면 돈을 내야 했다. 결과에 이의를 달 수도 없는, 일방적인 ‘답정너’ 평가이기도 했다. 핀테크산업의 발달이 이걸 바꿔놨다.

토스와 카카오뱅크를 비롯한 금융 앱들이 신용평가회사에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무료로 조회할 수 있게 해주면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통신비 등의 납부 내역을 대신 제출해 점수를 올려주기도 한다. 손님몰이용 마케팅으로 출발한 것이지만, 신용을 적극 관리하는 건전한 습관을 젊은 층 사이에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번째는 “정부가 연체자를 주기적으로 구제해줬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10만 명의 연체 기록을 삭제한 적이 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판이 더 커졌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250만 명, 2024년 윤석열 정부는 290만 명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을 단행했다. 원래는 밀린 빚을 다 갚아도 연체 기록이 신용평가회사에 5년까지 남는다. 그 이력을 자꾸 지우니 점수가 상향 평준화한다는 것이다. 현재 5대 대형 은행이 대출을 내주는 소비자의 평균 신용점수는 944.2점까지 올라왔다(6월 기준). 강제로 끌어올린 신용은 금융산업 전체로 볼 때 건전한 현상은 아니라는 게 싱크탱크들의 시각이다.

얼마 전 또 한 번의 신용 사면이 발표됐다. 과거 2000만원 이하였던 대상이 5000만원 이하로 확대돼 324만 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빚을 다 갚았으면 칭찬해야 하는데, 불이익을 주며 전과자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자를 대상으로 빚 탕감도 예정돼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똑같은 조건에서 빚을 자력으로 갚아낸 국민이 2020년 이후 361만1119명이다.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누군가는 재기의 기회를 나누는 데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국민에게도 정중한 설명과 설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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