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허용되지 않는 ‘비대면 진료’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다. 시범운영(실증 특례) 이후 실제 법 개정 절차로 이어지지 않아 벤처 기업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했던 규제 샌드박스 제도도 법령 정비를 ‘의무화’하는 쪽으로 손본다.
우선 정부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연말까지 추진한다. 비대면 진료란 말 그대로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의사 등 의료진에게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제도다. 스마트폰 앱에서 진료 후기와 평균 진료비 등을 살펴본 뒤 원하는 의료진을 골라 영상통화로 진료받고, 처방전을 앱으로 전송받아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받는 식이다.
외국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일상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현행법(의료법)상 비대면 진료가 불법이다. 의료계에선 “비대면 진료를 통해선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불가능하다”, “초진에서는 위험 요소가 더 두드러진다”며 꾸준히 반대 의장을 표명해 왔다.
비대면 진료는 정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시적으로 빗장을 풀어주면서 일반 국민들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병원을 찾기 힘든 여행지에서 갑자기 병에 걸린 환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일부러 연차를 냈던 부모, 명절 연휴에 배탈로 난감했던 환자 등이 비대면 진료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직장인 청장년층이 비대면 진료의 실질적 수요층으로 자리 잡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환자는 492만명에 달했다. 중대한 의료사고가 보고된 사례는 없었다.
<급증하는 비대면 진료 수요>
비대면 진료 시행 의료기관 2만3000곳 이용 환자 수 492만명
*2020년 2월~올해 2월 기준
*자료 : 보건복지부
현재 국회에는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는 법안이 4개 올라와 있다. 비대면 진료를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해서는 각기 내용이 다르다. 예컨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18세 미만 미성년자와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만 예외적으로 초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당 권칠승 의원은 반대로 14세 미만 아동에 한해서는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내용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최종 의료법 개정안이 어떤 형태로 정리될지는 국회에 달려있다. 정부안을 따로 발의할 계획은 없다”며 “올해 안에 법을 통과시켜 내년부터는 해당 의료법에 맞춰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정부는 처방전을 비대면으로 전송하는 공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돌입했으며, 관련 예산은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인 ‘2026 예산안’에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비대면 약 배송과 관련된 내용은 내년 경제성장전략에서는 제외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약 배송은 약사법 개정 사안이라 이번 의료법 개정 사안과는 별개”라며 “비대면 진료받은 뒤 공적 시스템에서 처방전을 전송받고, 약국에 가서 해당 처방전으로 약을 타오는 식으로 시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손보는 방안도 2025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 담았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된 2019년 이후 지난 3월까지 총 1819건의 실증 특례가 진행됐지만, 이 중 실제 법 개정(규제 개선)까지 이어져 시장에 출시된 사업은 429건(23.5%)에 불과했다.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된 지난 6년간 신사업 10개 중 8개는 시장의 빛을 못 보고 사라진 것이다.
샌드박스는 통상 3년간의 실증 특례를 시행한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법을 고쳐 규제를 개선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기존 이익집단의 반발, 부처 이기주의 등으로 각 규제 부처가 법 개정에 미온적이라 정식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예컨대 휴대폰으로 업체별 폐차 비용을 비교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해 2019년 3월 규제 샌드박스 시범운영(실증 특례)에 들어간 J사는 4년간 실증 특례를 시행한 뒤 정부로부터 즉시 시장에 출시해도 문제없다는 ‘임시허가’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기존 폐차업체들의 반발로 국토교통부는 관련 규제인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하지 못했고 J사는 2023년부터 3년째 정식 출시가 아니라 임시허가로 연명 중이다.
이에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법령 정비 의무 강화로 신속 추진을 뒷받침하겠다’는 내용을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 담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행정규제기본법을 올해 안에 개정하는 것이 목표”라며 “예컨대 같은 법 19조의 3에 따르면 ‘규제를 신속하게 정비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규제 정비를 의무화한다’로 수정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자문기구인 국조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를 의결기구로 바꾸는 방법도 논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에게는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 설치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도 담겼다.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바닥면적 50㎡ 이상 상시 근로자 100인 미만 사업장(카페 식당 PC방 등)에서 키오스크를 설치할 때는 반드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제품을 써야 한다.
하지만 배리어프리 제품은 700만원으로 일반 제품보다 세 배가량 비싸고, 멀쩡한 키오스크를 더 비싼 키오스크 제품으로 바꿔야 해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상당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정부는 소상공인 가게에 한해 도움벨이나 보조 인력 등을 배치하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설치한 것으로 갈음해주기로 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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