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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원전 발목 잡는 美 웨스팅하우스의 그림자

입력 2025-08-29 08:13   수정 2025-08-29 09:06

[비즈니스 포커스]



K원전이 한·미 경제협력의 또 다른 핵심축인 ‘제2의 MASGA’로 뜨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사 엑스에너지,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원전 사업 협력에 적극 나서면서 K원전의 북미 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K원전의 기술적 뿌리이자 오랜 파트너인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의 관계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수원과 WEC가 글로벌 합작사 설립을 논의하는 가운데 최근 불거진 ‘불공정 계약’과 지식재산권(IP) 분쟁 이슈가 재조명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술 도입국→수출국으로…경쟁자로 부상


한국이 원전을 가동한 첫날은 1978년 4월 29일 고리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한국은 세계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원전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 첫 단추를 꿰게 한 것은 미국 WEC의 가압경수로(PWR) 기술이었다. 고리 1호기의 원자로가 바로 이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이후 한국은 WEC 기술을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시스템80 모델을 도입했다. 점차 국산화에 성공, 2세대 모델인 OPR1000부터 완전 독자 개발 모델인 APR1400까지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APR1400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을 성공시키며 K원전 브랜드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WEC의 기술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K원전이 세계로 뻗어나갈 때마다 WEC의 원천기술과 IP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 시장 진출이나 제3국 수출 과정에서 이 문제가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하는 점은 여전하다.

WEC는 20세기 후반 세계 원전 시장을 주도한 ‘글로벌 표준’이었다. 1980년대까지 미국 원전 산업의 상징으로 각국의 원전 건설을 이끌었지만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은 사실상 중단됐고 1996년 이후 20년 넘게 신규 착공이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산업 생태계가 위축됐다. WEC는 2006년 일본 도시바에 인수됐으나 조지아주 보글 원전 3·4호기 건설이 장기간 지연되고 결국 중단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2017년 파산했다.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추진된 대형 원전은 보글 원전이 유일하다. 전문가들은 보글 3·4호기 이후 미국 내 원전 건설 사업 추진 경험이 전무해지면서 원전 건설 역량이 크게 약화됐다고 평가한다. WEC는 현재 캐나다계 사모펀드 브룩필드 자회사로 운영 중이다. 미국 국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배구조는 글로벌 금융자본에 속해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웨스팅하우스를 전략적 자산으로 분류하지만 경영은 시장 논리에 따르는 현실적인 딜레마가 존재한다. 한국과 WEC의 관계는 과거 ‘기술 도입국’에서 ‘수출 경쟁자’로 변했다. 해외 시장에서 K원전과 맞붙으며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복잡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게 된 이유다.

사모펀드로 주인이 바뀌고 나서부터 WEC는 기술 혁신보다는 특허를 앞세워 경쟁사를 견제하는 ‘특허 괴물’로 변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한국과의 원전 기술 분쟁에서 WEC는 과거 기술 도입 과정에서 확보한 IP를 근거로 수출을 방해하는 등 공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입지 약화를 특허권 행사로 만회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력 수요 급증에 사고 원전도 되살려…K원전 시공 역량 절실


한국은 1987년 미국 컨버스천엔지니어링(CE)과 기술전수 계약을 체결해 2세대 OPR1000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3세대 APR1400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CE가 2000년에 웨스팅하우스에 인수되면서 CE의 설계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도 WEC가 갖게 됐다. 결국 APR 시리즈는 미국 PWR 원천기술을 근간으로 한다.

한국은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 계측제어시스템(MMIS), 설계코드 등 핵심 부품과 시스템에서 국산화를 상당 부분 이뤘다. 하지만 ‘완전한 기술 독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WEC가 원천기술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IP 분쟁 가능성은 늘 따라붙는다. 2022년 폴란드 원전 수출 추진 당시 WEC가 자사 기술이 포함됐다고 문제 삼아 제동을 건 사례가 대표적이다.

WEC가 파산 위기를 겪을 당시인 2005년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이 WEC 인수를 검토했으나 미국 정부가 자국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외국 자본 인수를 반대하며 무산된 일화가 있다.

현재 미국은 전력 수요 증가, SMR 개발, AI 데이터센터 확장 대응을 위해 원전 산업 재건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WEC는 2017년 파산 이후 미국 내 원전 설계·시공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재건과 SMR 확대를 위해서는 한국의 APR1400 등 독자 기술과 시공 경험이 필수적이다.

WEC가 전통적 파트너 벡텔 대신 현대건설과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도 미국 내 원전 착공이 멈추면서 시공 경험이 부족해지자 해외 경험이 풍부한 현대건설과 힘을 합쳐 글로벌 시공 역량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반면 한국은 미국 시장 진출과 SMR 공동 개발,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해 WEC의 기술과 IP가 필요한 상황이다. 시공 역량과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양측의 협력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수원이 WEC와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단순한 협력 차원을 넘어 상호 IP 리스크를 해소하고 미국 시장 진출의 제도적 장벽을 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끊이지 않는 기술 주권 논란…“협상에 신중한 접근 필수”


최근 원전업계를 뜨겁게 달군 ‘불공정 계약’ 논란은 지난 6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 본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WEC와 불평등한 계약을 맺었다는 논란이다.

한전과 한수원이 올해 1월 WEC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 따르면 원전 1기당 1억7500만 달러의 기술 사용료를 지급하고 6억5000만 달러 규모의 기자재를 WEC로부터 구매해야 한다. 아울러 북미, 유럽연합, 영국 등 주요 시장에서 신규 원전 사업 수주를 제한하고 SMR 수출 시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한 조항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한수원과 WEC는 글로벌 합작사(JV) 설립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기술사용료, 수익 배분, 수출시장 역할 등 구체적인 조건에서 이견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한·미 정상회담 기간 면담을 시도했으나 회동은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물밑에서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이번 협약은 국제 정세와 복잡한 외교 환경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통제가 한국 원전 산업 선택지를 좁혔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수원이 현실적 압박 속에서 최악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협약은 단순한 종속 관계가 아닌, 상호 동등한 파트너십 재정립의 전환점”이라며 “JV가 본격화되면 한국 원전 산업의 기술력과 역량이 한층 더 인정받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지나친 외부 압력은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신중한 접근과 인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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