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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희망 있나' 물음에…베르베르의 대답은 '대한민국' [설지연의 독설(讀說)]

입력 2025-09-05 13:12   수정 2025-09-05 15:27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키메라의 땅>이 국내에 출간됐다. <개미>, <타나토노트>, <뇌> 등으로 두터운 국내 팬층을 확보해온 그는 이번에도 출간 직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며, 한국 독자들의 꾸준한 신뢰와 기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소설은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 스스로 자멸한 뒤, 인간과 동물의 혼종인 '키메라'가 새로운 종으로 등장한다는 파격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박쥐·돌고래·두더지의 특성을 결합해 만들어진 신인류의 탄생과 그들이 세운 도시, 그리고 그 안에서 되풀이되는 갈등과 권력의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베르베르는 이번 작품에서도 과학과 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과학 기자 출신답게 유전공학과 진화생물학의 지식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축하면서도, 서사의 끝에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을 남긴다. 그는 "SF는 재앙을 묘사하는 장르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해법을 제안하는 문학"이라고 강조한다. <키메라의 땅>은 그 믿음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한국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베르베르에게도 각별하다. 그는 "한국은 늘 시대를 앞서가고, 독창적인 것에 열려 있는 나라"라며 한국과의 특별한 유대감을 밝혔다. 그를 서울 합동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만났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이번 신간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국내 작가들도 책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는 드문데, 특히 한국에서 작가님의 인기가 두드러집니다. SF 소설이 아주 대중적인 나라는 아닌데도요. 아마도 많이 들으셨을 질문일 텐데요,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걸 해보려고 노력해요. 제 성공의 비결은 바로 상상력입니다. 언제나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하고, 이미 쓰인 건 다시 쓰지 않으려 합니다. 또 내용이나 스타일에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제 책이 사랑받는 건 한국 독자들이 새로운 것, 독창적인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한국은 늘 시대를 앞서가는 나라라고 느낍니다. 그런 한국에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고요. 저에게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죠. 한국만의 지적인 분위기와 교육열은, 안타깝게도 프랑스에서는 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1994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받은 따뜻한 환대도 잊을 수 없어요. 또 제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출판사(열린책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개미>를 출간한다는 건 큰 모험이었는데. 그 도전을 했죠. 다른 나라 출판사들도 어떻게 제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며 물어봤다고 들었습니다. 책이 성공하려면 결국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해야 합니다."

▶ <키메라의 땅>은 핵전쟁 이후 지구를 배경으로 신인류 '키메라'가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어디서 비롯됐나요?

"저는 SF의 기능이 해법을 찾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재앙을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제안하는 유토피아적 SF를 씁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잘못된 선택이 반복되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이런 결정을 피할 수 있을까 고민하죠. <키메라의 땅>은 그 해법을 생물학적으로 제시한 작품입니다."

▶ 작품 속 키메라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으로 등장합니다. 인간과 혼합할 동물로 박쥐, 두더지, 돌고래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각종 재난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세 가지 형태의 종을 구상했어요. 그리스 신화 속 키메라는 용, 사자, 염소가 섞인 아주 복잡한 존재였죠. 인간과 가장 가까운 특징을 가진 동물을 고르려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동물로는, 새보다 박쥐가 우리와 훨씬 닮았습니다. 깃털이 아니라 긴 손가락이 있는 날개를 가졌으니까요. 지진을 피해 공중으로 몸을 피할 수 있겠죠. 돌고래도 물속에서 살지만, 포유류이고 공기로 숨을 쉬며 아가미와 비늘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 가깝습니다. 쓰나미, 홍수 등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더지는 굴을 파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기에 선택했습니다. 기후 온난화가 극심해졌을 때 강렬한 태양 빛을 피해 땅속에 몸을 숨길 수 있을 거예요."

▶ 이번 작품은 유전공학과 진화생물학의 색채가 강합니다. 집필 과정에서 어떤 과학적 자료나 연구에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저는 예전에 과학 기자였고 지금도 과학자 친구들에게 자주 자문을 구합니다. 인터넷보다 직접 과학자들과 대화하는 걸 선호하지만, 물론 인터넷에도 필요한 자료는 다 있죠."

▶ 작가님은 과학과 문학을 자연스럽게 결합하는데, 특별한 글쓰기 방식이 있나요?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소설 아이디어로 연결되나요?

"프랑스에는 '쥘 베른'처럼 과학과 문학을 결합한 전통이 있습니다. 저도 과학 기자로 일하면서 '대중화' 작업을 많이 했죠. 저에게 문학과 과학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책을 쓸 때는 늘 아이디어의 씨앗이 있습니다. 시작점, 발전 방식, 그리고 놀라운 결말. 이 세 가지가 정리되면 책은 이미 다 쓴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가끔 ‘책 한 권 쓰는 데 30초면 충분하다’고 농담하곤 합니다.

<키메라의 땅>도 '한 여자가 세 가지 인간, 동물 혼종을 만든다'는 상상에서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그 여자가 연구에 성공해서 혼종들만 사는 도시가 생성됐다'는 것이었고요. 세 번째는 '혼종이 사는 도시에도 결국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되풀이한다'는 발상으로 확장해 나갔죠."



▶ 소설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나비 효과'처럼 작은 사건에서 시작된다고 묘사하신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 암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맥줏집 연설에서 시작됐습니다. 매번 작은 사건 하나가 역사를 바꿔놓았죠. 작은 일이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 소설은 인류가 스스로 자멸한 뒤에도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성찰을 하길 바라나요?

"첫째, 모든 동물은 여러 종이 있는데, 인간만 단일 종으로 존재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둘째, 그 때문에 인간은 질병이나 재난에 취약합니다. 자연은 다양성을 통해 진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단일화시키려고 하죠. 인류 역시 호모 사피엔스만 남기보다 여러 인류 종이 공존하던 과거처럼 다양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해법이라고 생각해요."

▶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많은 작가가 다뤄온 주제인데, <키메라의 땅>이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과학 기자 시절 접했던 생물학 정보를 토대로 글을 씁니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연구 성과, 발견에 기반을 두려는 거죠. 예컨대 이미 인간-돼지 혼종으로 이식용 장기를 만드는 실험이 있었잖아요. 저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 DNA와 동물 DNA의 결합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집필할 땐 항상 아이디어와 함께 과학적 설명을 곁들이려 합니다."

▶ 이야기 끝에 남는 건 결국 도롱뇽입니다. 왜 도롱뇽인가요?

"아홀로틀(axolotl)이라는 도롱뇽은 놀라운 동물입니다. 인간-아홀로틀 혼종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전에 다른 세 가지 방식을 먼저 시도해봐야 했습니다. 아홀로틀은 멕시코 호수에서 사는 동물인데, 사람들이 잡아먹는 바람에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아, 잠시만요. 차기작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메모를 좀 해야겠네요. (웃음)"

▶ 도롱뇽에게 희망을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일하게 불멸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아홀로틀은 평생 배아 상태로 살면서도 번식이 가능합니다. 불멸에 가장 가까운 존재죠. 자연의 신비입니다."

▶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시는지, 비관적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비관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입니다. 한국이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 사람들이 바르게 행동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덜 낳는데, 출산율이 낮은 건 아이들에게 교육을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세계가 그렇게 가야 합니다. 아이를 덜 낳고, 낳은 아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존재 자체가 놀랍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6·25 전쟁 등 위기에서도 올바른 선택 덕에 지금의 번영을 이뤘습니다. 자원도 부족한 나라가 교육만으로 이 정도 성취를 거둔 건,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 작가님의 왕성한 창작력도 놀랍습니다. 1991년 <개미>를 시작으로 총 19편의 장편소설을 쓰셨습니다. 이밖에 단편집과 희곡 등도 있고요. 비결은 무엇인가요? AI도 종종 활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비결이라면 '잘 쓰지 못한 초고라도 일단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쳐 나가죠. AI는 자료 수집을 도와주는 정도로 아주 조금만 씁니다. 과학자들과 직접 얘기하는 걸 선호하고, 구글 검색도 많이 활용합니다. 챗GPT도 써봤는데, 제가 쓴 책들을 잘 흉내 내더군요. 하지만 제 무의식까지 이해할 수는 없어요. 미래에 제가 쓸 책까지는 예측 못 합니다. 이미 쓴 것을 복제할 뿐이죠."

▶ 평소 다른 작가들의 책도 많이 읽으시나요?

"아주 조금 읽는 편입니다. 집필이 깊어질수록 더더욱요. 많아야 1년에 한두 권 정도 읽습니다. 대신 그만큼 더 씁니다.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글을 쓰고 싶어져서요."

▶ 앞으로 계획 중인 차기작을 살짝 말씀해 주신다면요?

"다음달 프랑스에서 '나무의 목소리'(원제 La Voix de l'Arbre 직역)가 출간됩니다. 나무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또 숲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작가님께 영감을 준 책이나 즐겨 읽어온 책, 그리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등 10권을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1. <앨저넌에게 꽃을> | 대니얼 키스? 지성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글쓰기에 대한, 각성의 힘에 대한 찬사.

2. <파운데이션> | 아이작 아시모프- 과학을 근거로 한, 우리의 먼 미래에 대한 예견적인 책.

3. <듄> | 프랭크 허버트- 종교적 맹신과 생태학적 감각 상실이라는 두 가지 위협을 다룬다.

4. <도덕경> | 노자- 보편적인 지혜에 관한 책.

5. <유빅> | 필립 K. 딕- '현실이란 무엇이고, 과연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6. <사계> | 스티븐 킹- 심리학의 보석과 같은 네 편의 단편소설.

7. <신비의 섬> | 쥘 베른- 완전한 과학모험 이야기.

8. <유령이 쓴 책> | 데이비드 미첼- 샤머니즘과 영혼에 대한 성찰.

9. <다시 한번 리플레이> | 켄 그림우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생 여정을 그린다.

10. <체스 이야기> | 슈테판 츠바이크- 실패, 광기 그리고 인간 정신의 작용에 관한 성찰.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추천 책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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