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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결혼한 '트럼프'의 교훈…한국에선 안통한다 '치명적' [노종언의 가사언박싱]

입력 2025-09-05 17:15   수정 2025-09-05 21:27

한경 로앤비즈가 선보이는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혼전계약이 단순한 '결혼 전 약속'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일 것입니다.

첫 부인 이바나와의 이혼 과정에서 그는 네 차례나 수정된 혼전계약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 값비싼 경험은 두 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와의 계약에서 훨씬 더 엄격하고 방어적인 조항으로 이어졌습니다. 5년 내 이혼 시 100만 달러라는 상한선을 정하고, 배우자 부양료 청구권까지 포기시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부인인 멜라니아와의 계약입니다. 이들의 계약은 트럼프의 정치행보라는 중대한 전환점에서 여러 차례 재협상을 거치며 혼전계약이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변화를 겪었습니다. 멜라니아가 남편의 대통령 당선 이후 백악관 입주를 늦춘 이유가 혼전계약 재협상 때문일 수 있다는 외신보도는 혼전계약이 결혼 중 상황변화에 따라 수정될 수 있는 장기적이고 능동적인 형태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미국에서 혼전계약, 즉 '프리넙(prenup)'은 결혼이라는 신분 관계에 앞서, 이혼이라는 잠재적 위험을 관리하고 각자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고도로 발달한 재무적 계약입니다. 계약 당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되, 사기나 강압, 극심한 불공정을 막기 위한 사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의 '부부재산계약'...이혼 앞에서 무력한 반쪽 계약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고 재혼 가정이 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혼전계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서구의 '프리넙'을 상상하며 한국의 혼전계약을 생각한다면 치명적인 오해와 마주하게 됩니다.

현행 민법 제829조가 규정하는 한국의 제도는 '혼전계약'이 아닌 '부부재산계약'으로, 그 기능이 극히 한정적입니다. 이 계약의 핵심은 결혼 생활 중에 누구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소유할지를 정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 각자의 월급은 공동재산이 아닌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하기로 약정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계약이 '이혼'이라는 결정적 순간에 그 효력을 잃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이혼 시 재산 형성에 기여한 만큼 나누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재산분할청구권'은 혼인 관계가 끝나는 시점에 비로소 발생하는 권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권리를 결혼 전에 미리 포기하는 약정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확고한 판례입니다.

이는 "이혼하더라도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합의가 담긴 혼전계약서는 무효라는 의미입니다. 미국인이 이혼 시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한국인 배우자와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한국 법원에서는 그 조항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국 한국의 제도는 이혼 계획을 위한 사전 합의가 아니라, 혼인 관계 유지를 전제로 한 재산 관리 도구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이는 한국의 법체계가 당사자의 자율적 합의보다 이혼 시 공정한 결과를 보장하려는 국가의 보호적 역할을 우선시한다는 법철학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대에 뒤처진 법, 새로운 합의 필요

문제는 현재의 법체계가 변화하는 사회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혼과 재혼의 증가로 결혼 전 각자 상당한 자산을 형성한 이들이 늘고 있으며,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보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재산 관계를 설정하길 원합니다. 특히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커플에게 한국과 서구의 혼전계약에 대한 개념적 격차는 예기치 못한 법적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 추세 또한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혼전계약을 인정하지 않았던 영국조차 2010년 판결을 통해,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한 계약의 효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독일 역시 공증인의 중립적 조언을 통해 계약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전제하에 당사자 간의 합의를 폭넓게 인정합니다. 이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국가의 사법적 감독 사이에서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가는 절충적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약속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재산 관계를 동반하는 생활 공동체입니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명확하고 공정한 사전 합의는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여 건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법적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한국형 혼전계약' 제도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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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 I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48회 사법시험 합격, 제40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IBK기업은행,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법무팀장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법률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故 구하라 유족 법률대리인으로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주도하여 2021년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동물자유연대 등기이사이자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 통합자문단 보상·보험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다수 TV 프로그램에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이자 법무법인 존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지상 변호사와 함께 유튜브 채널 '상속언박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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