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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잇따른 강력한 대출 규제가 시행되자 계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서초구, 강남구의 고가 주택에서 계약 취소 비율이 급등했습니다. 즉시 시행된 6·27 대책 전까지 대출을 신청하지 못한 경우 최대 6억 원까지 대출이 나오지 않게 됐습니다.
고가 주택의 잔금을 마련하지 못한 이른바 '영끌' 매수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계약을 취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강력한 대출 규제에 따른 불안감과 미래의 가격 하락 우려가 겹치면서 계약금 몰취를 감수하는 상황입니다.
역대 최고 계약취소, 의도적인 집값 띄우기?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계약 취소는 사실상 '해제'를 의미합니다.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며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65조). 통상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매매대금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지급합니다.예를 들어 매매대금이 20억 원이라면 2억 원을, 30억 원이라면 3억 원을 포기하고 없던 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당장 억대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집값이 그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면 매수인은 과감히 손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약 취소가 반드시 대출 규제의 여파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매매계약 취소 3건 중 1건은 계약 당시 최고가 거래였습니다. 일부 고가 아파트에서는 단지 및 평형별 최고가 거래가 신고된 뒤, 더 높은 거래가 이뤄진 다음에 계약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압구정의 한 대형 아파트는 3월에 90억 원 거래가 신고되었지만 7월에 취소됐습니다. 그런데 해제 사유 발생 이전 약 4개월 동안 90억 원을 초과하는 거래가 5건이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의도적인 집값 띄우기라는 의심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취소', 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어
계약금을 포기하는 뜻의 해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취소'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해제와 취소 모두 계약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취소가 인정되면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민법상의 이자(연 5%)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반면 앞선 해제에서는 계약금을 모두 날려야 합니다. 예컨대 앞선 압구정 아파트 거래에서 90억 원의 계약을 해제했다면 무려 9억 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취소가 가능하다면 계약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취소할 수 있을까요?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10조). 착오는 법률행위의 중요한 부분에 있어야 취소가 가능합니다. 계약 체결 후 정부가 고강도의 대출 규제를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으니 착오가 아니냐는 의문도 들지만, 이는 법률상 착오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착오는 계약 체결 당시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오인이기 때문입니다.
즉, 장래 사정을 예측했는데 기대와 달리 결과가 달라진 경우는 착오로 볼 수 없습니다. 이는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감수해야 할 위험입니다. 따라서 대출 규제가 없을 것이라 기대하고 계약을 했다 해도 법률상 착오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결국 대출 규제 발표만으로는 계약을 취소할 수 없고, 억울하더라도 계약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고가 거래가 취소됐다. 취소 가능할까?
그렇다면 신고가 거래가 취소된 경우 후속 거래도 취소할 수 있을까요? 직전 신고가가 유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계약 당시 이미 존재한 사정이라 착오로 볼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매매계약서에 직전 신고가를 기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계약의 직접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매수인이 '최고가 거래가 유효하다'고 믿고 거래 가격을 정한 것인데, 이는 법률상 '동기의 착오'입니다.판례는 단순히 동기의 착오만으로는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계약 체결의 이유는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이유에 착오가 있다고 해서 계약을 무효로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동기의 착오라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명시적으로 표시되어 계약에 편입된 경우에는 취소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직전 최고가 거래가 취소되면 본 계약도 무효로 한다"는 식의 특약이 있다면 취소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매도인은 이런 특약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직전 신고가가 취소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며, 여전히 계약금을 포기해야만 계약을 물릴 수 있습니다.

매도인이 직전 신고가 거래 관여했다면 돌려받기 가능
그러나 직전 신고가 거래가 의도적인 집값 띄우기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여기에 후속 거래의 매도인이 그 과정에 관여했다면 이는 단순한 착오를 넘어 '사기' 거래가 될 수 있습니다. 허위 거래를 통해 실거래가 신고 시스템에 비정상적인 가격을 등재시킨 뒤 이를 근거로 거래를 유도한 것은 매수인을 속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이런 경우는 착오에서 나아가 사기란 이유로 취소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지 않고 전액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앞선 압구정 아파트 사례에서는 무려 10억 원의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입증입니다. 민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취소를 주장하는 매수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후속 거래 당사자가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강제조사가 가능한 수사기관이 나서야 밝혀질 수 있는 사안입니다. 매수인이 스스로 소송에서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면, 결국 계약금을 포기해야 합니다.
부동산감독원 신설, 집값 띄우기 근절될까?
결국 이 문제는 정부가 나서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정부는 이상 거래를 탐지하는 '부동산감독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계약서와 계약금 입금 증빙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과거에는 계약금을 실제 입금하지 않고도 신고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계약금이 실제로 입금되어야 실거래로 인정됩니다.부동산 거래는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을 건 인생 최대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거래의 신뢰성과 투명성은 금융거래보다도 더 철저히 감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의지가 흔들림 없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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