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비자인 H-1B 신청 수수료를 1000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100배 인상하면서 미국 취직을 목표로 한 유학생이 날벼락을 맞게 됐다. 전문직 비자 소지자를 대거 채용 중인 미국 빅테크도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미국이 혁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핵심 수단을 스스로 걷어찼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악관은 20일(현지시간) 이번 조치에 대해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적용되고 기존 비자 소지자와 갱신 신청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백악관은 “비자를 신청할 때만 부과되는 일회성 수수료”라며 연간 수수료란 말도 뒤집었다. 최초 발표와 백악관 설명이 다르게 나오면서 혼선이 일고 있다.워싱턴 정가에선 이번 조치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성 지지층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2기 정부와 지지층을 구성하는 큰 축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MAGA 세력과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돈을 후원한 ‘실리콘밸리 세력’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실리콘밸리 세력은 H-1B 비자 정책을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H-1B 비자는 훌륭한 프로그램이고 이를 항상 지지해 왔다”고 했다. 반면 MAGA 세력은 H-1B 비자 프로그램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트럼프 대통령 책사로 알려진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도 H-1B 비자 제도 폐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 수수료가 10만달러까지 오르면 현실적으로 개인이 이를 지급하거나 채용하는 기업이 비용을 후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머스크 CEO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빅테크 CEO를 다수 배출한 H-1B 비자 문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우수 인재를 흡수해온 미국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채용되면 미국 고용주가 H-1B 비자를 청원하는 형태로 비자를 전환한다. OPT 단계에서 H-1B 비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불확실해지면 미국 기업은 유학생을 채용할 유인이 약해진다. 지금도 일부 미국 기업은 유학생에게 ‘비자 스폰서 불가’ 조건을 내걸고 있다. 한 유학 준비생 학부모는 “미국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면 한국의 네 배에 달하는 (미국) 등록금을 낼 가치가 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과 연구소 입장에선 미국의 이번 조치가 전문 인력을 유치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H-1B 비자를 발급받거나 갱신한 외국인을 국적별로 보면 인도가 23만 명 이상으로 가장 많고 중국이 4만6600여 명으로 두 번째였다. 한국도 3900여 명에 달했다.
김동현/고재연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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