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B 비자는 세계 최고급 인재를 미국으로 불러 모으는 통로 역할을 해 왔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고교까지 다니고 캐나다를 거쳐 H-1B 비자로 미국에 정착했다. 인도계 미국인인 사티아 나델라 MS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마찬가지다. 머스크 CEO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부효율위원회 수장을 맡으며 정부 개혁에 나섰을 때도 유독 H-1B 비자 문제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작년에 반이민 정서와 연관돼 H-1B 비자 논쟁이 벌어지자 X를 통해 “스페이스X, 테슬라 그리고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백 개의 다른 회사를 세운 수많은 핵심 인력이 미국에 있는 것은 H1B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은 다른 빅테크도 마찬가지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H-1B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아마존(1만44명), 타타컨설턴시(5505명), MS(5189명), 메타(5123명), 애플(4202명), 구글(4181명) 순으로 집계됐다. 미 정부 발표 이후 빅테크들이 극심한 혼란을 겪은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미국 이민법 전문 로펌과 변호사들도 쇄도하는 고객 문의에 시달렸다. 로펌 피셔필립스의 이민법 변호사 섀넌 R 스티븐슨은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종일 다양한 분야 고객들의 전화와 이메일 등을 받았다”며 “이번 발표는 아무 예고도 없이 심지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조차 없이 이뤄졌다.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H-1 비자 정책 변화의 시작일 뿐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스티븐슨 변호사는 WSJ에 “이것은 H-1B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공격의 첫 단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선 빅테크 수장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신종 메카시즘’에 순응하는 터라 채용 정책에 대대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인상된 수수료를 감당할 정도로 유능한 인재가 아닌 한 기업이 H-1B 비자로 취업문을 두드리거나 비자 연장이 불가피한 이들을 고용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인공지능(AI) 기술 진전으로 초·중급 엔지니어 채용문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아시아계 유학생의 미국 취업은 사실상 봉쇄될 것”으로 예상했다. 멘로벤처스의 디디 다스는 “세계 최고 인재를 미국에 유치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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