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달 제주에서 시작되는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앞서 일부 지역 의료기관에서 진행한 주치의제 예비 시범 사례가 공개됐다. 환자들의 약물 복용량이 절반 이하로 줄고 건강 지표가 개선되는 효과가 확인됐지만 의료계는 제도 설계 미비와 환자 선택권 제한 등을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혜민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23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에서 열린 ‘미리 가보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사례공유 워크숍’에서 “환자들이 국가검진이나 종합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거나,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치의 상담을 통해 결과를 설명하고 필요한 검사를 안내하면 불필요한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문의는 다제약물 관리 사례를 소개하며 여러 병원에 오가며 열 가지 이상 약을 먹던 환자가 주치의와 약사 협진을 거쳐 복용 약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이 약을 제대로 먹지 않거나 같은 효능의 약을 중복해 쓰는 문제는 결국 주치의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서울대 의대 임상의료정책연구회 등이 주최한 워크샵에서 주치의제 예비 시범 과정의 성과와 한계 등을 공유했다. 정부의 제도 설계가 구체화하기 전 실제 현장에서 주치의제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는 취지다.
예비 평가를 위해 올해 7월부터 전국 6~7개 의료기관들은 10~20명의 환자를 등록해 두 달간 주치의제를 자체 운영했다. 이번 워크숍은 그 과정에서 나타난 환자들의 변화를 공개하고 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지원 서울봄연합의원 간호사는 주치의의 주기적 혈당 모니터링 및 생활 습관 지도 사례를 발표했다. 정 간호사는 낙상 환자의 사례를 들어 “환자가 치료 중간에 한방병원에 입원하면서 주치의 팀과 분리됐을 때 혈당 수치가 불안정해졌지만 이후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리로 다시 안정세를 회복했다”며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는 지난달 “주치의제가 포괄적 건강관리 체계를 표방하더라도 운영 방식과 참여 요건, 진료 범위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한내과의사회도 지난달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차의료 강화 특별법안’에 대해 “주치의 제도 도입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확보도 없이 의료인을 철저히 배제한 채 책임만 부과하는 방식으로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이 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수가(진료 보상체계)’ 문제도 제도 도입의 난제로 꼽힌다. 의료계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가 진찰·검사·시술 등 개별 행위에만 보상을 집중해 환자 상담이나 생활 습관 관리 같은 핵심 서비스는 보상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보상 방식 논의조차 본격화되지 못한 만큼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주치의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번에 참여한 지역 의료기관은 수가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고 사실상 희생하며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주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행위별 수가제만으로는 지속할 수 있지 않다. 결과에 대한 가치 기반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 과제를 확정하면서 다학제 팀 기반의 포괄적 건강관리 제공과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지역사회 주치의 모델 단계적 확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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