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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간단후쿠' 낸 소설가 김숨 "당신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입력 2025-10-02 09:03   수정 2025-10-02 09:04



소설가가 10년 동안 하나의 소재를 붙잡고 여러 작품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단어와 글감을 다루면서도 매번 새롭게 읽혀야 한다. 더구나 그 소재가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라면. 작가의 표현대로 '징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최근 장편소설 <간단후쿠>를 출간한 소설가 김숨은 "10년간 이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도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인 전쟁, 국가폭력, 트라우마와 집단 성폭력 문제를 10년간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폭력의 가해자가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성찰하고 배우지 않으면 우리도 가해자로 돌변하는 위험에 언제든 놓일 수 있어요. 소녀를 팔아넘긴 사람들, 군인들, 위안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고향으로 돌아온 뒤 2차 가해를 한 사람들까지…. 무사유, 무지로 인해 그런 일을 저질렀겠죠. 소설 쓰면서 제 태도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게 된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제 무지, 무감각을 씻어주는 거 같아요."

이번 소설 제목인 '간단후쿠'는 위안소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이 입고 생활한 원피스를 일컫는 단어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만주 스즈랑 위안소에 끌려온 15세 소녀가 임신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만삭에 이르는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그린다. 삶의 활력보다 죽음의 공포가 흔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생명을 품은 소녀의 이야기다. 소설은 참혹한 폭력의 현장을 특유의 시적 문장으로 그려내 독자가 소설로부터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든다. 아름답게 슬프다. 마치 노란 봄꽃 위에 간단후쿠의 실루엣을 포개놓은 책 표지처럼.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

맨처음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 이유를 묻자 "제가 택한 게 아니다. 할머니가 제게 온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작은 2014년 여름호 '작가세계'에 실은 중편 '뿌리 이야기'였다. 김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였던 고모할머니를 짧게 등장시켰는데,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며 "평범한 사람들도 하루를 살아내기가 너무 힘든데 엄청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할머니의 하루는 어떨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위안부' 생존자가 한 명 남은 미래를 가정한 장편 <한 명>(2016)을 썼다. "기록에 의존해 <한 명>을 쓴 뒤 부끄러웠어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체화하지 못한 채 쓴 걸 저 스스로는 아니까요."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만남을 이어온 그는 길원옥·김복동 증언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 보는 거야>(2018)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2018), <듣기 시간>(2021) 등을 써냈다. 그는 이번 소설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10년이라는 '징한' 만남을 갖고 나서야, 그분들 이야기를 마침내 소설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상 형식인 <한 명>과 달리 <간단후쿠>는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삼았다. 위안소의 일상에 독자가 들어가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남을 이어오며 그가 발굴한 건 '개인'이다. "길원옥 할머니는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르시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세요. 가사도 다 외우시고요. 그런데 남들이 듣는 데서는 노래를 안 부르셨었대요. 남들이 들으면 '쟤가 살아 돌아와서 노래를 부르는구나' 할까봐…."

김 작가는 거대한 역사에 가려져 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이번 소설을 통해 복원한다. 소설 속 소녀들은 같은 위안소에 갇혀 있어도 사연과 감정이 각기 다르다. 말을 잊은 '미치코', 아편에 중독된 '사쿠라코', 죽을 때까지 저항하는 '레이코'…. 수난을 버티는 방식도 일본군에 대한 감정도 단순화하지 않는다. 김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면 흔히 단일한 집단으로 이해하지만 저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며 "거짓말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성폭력을 묘사하는 장면이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검열'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소설 '작가의 말'에 "우리의 미래가 되어 찾아오실 할머니들께 이 소설을 드린다"고 썼다. 추천사를 제외하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는 맨마지막 문장이다. 왜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까. 김 작가는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하는 자세가 우리의 딸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그게 각국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다른 국가의 피해자들과 연대하려 노력한 이유"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가 그간 일본군 '위안부' 얘기만 써온 건 아니다. 그 사이에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다룬 <L의 운동화>(2016), 고려인의 강제 이주를 그린 <떠도는 땅>(2020),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단편을 엮은 연작소설집 <무지개 눈>(2025) 등을 냈다. 이들을 잇는 단어는 '기억과 회복'. 김 작가는 "제가 쓴 소설들이 앞으로 쓸 소설들도 가져다주는 것 같다"고 했다.

다음 작품을 잇는 키워드는 '할머니'일까. 섬을 배경으로 해녀 할머니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2019년 가파도 예술가 레지던시에 머물며 초고를 썼다. 가파도를 다시 답사하느라 전날 집으로 돌아왔다는 김 작가는 "가파도에 지내며 하루에만 24절기가 있는 것 같은 변화무쌍한 날씨를 겪었다"며 "섬이 갖고 있는 커다란 고독과 무시무시한 자연을 체험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징한' 10년을 보냈다. 이번 소설이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마지막 작품일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작가는 "위안소가 운영되던 시공간의 이야기를 또 쓸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계속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답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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