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301.69
(3.65
0.07%)
코스닥
1,115.20
(12.35
1.1%)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통제를 넘어 꽃피우다…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스피크이지 바' [류재도의 테마가 있는 다이닝]

입력 2026-02-10 10:18   수정 2026-02-10 17:30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개구리 이야기를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통제에 대한 반발 심리는 거스를 수 없는 '금지'로 귀결돼 왔다. 금지의 대상은 역설적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다.

1920년 미국은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위한 명분으로 금주령을 내렸다. 1차 세계대전 직후 1920년대 미국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문화적 부흥기를 누리게 된다. 이때 도심 속 음지에서는 불법 주점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문화가 번지는 효과를 동반했다. 법 단속을 피해 벽 너머 은밀한 공간에 바를 차려놓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드나들기 위한 암호 장치들이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스피크이지(Speakeasy)라는 표현은 비밀스럽게 소곤거리거나 존재에 대해 쉬쉬하는 암묵적인 소통에서 유래했다. 아이러니는 끼리끼리의 비밀 공간으로 만든 스피크이지 바에 정체를 숨기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구성이 계층, 성별, 인종까지 초월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은 물론 단속 경찰까지도 드나들었다. 뉴욕에서 스타벅스 매장 밀도만큼 퍼져있던 스피크이지 바는 은밀하지만 사회 통합적인 사교장 역할을 했던 셈이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정점에 치달은 1933년, 금주령이 막을 내리면서 스피크이지 바 문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2000년대 들어 뉴욕에 다시 등장한 모던 스피크이지 바 문화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색적인 경험 콘텐츠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는 이내 뉴욕처럼 미식 문화가 발달한 홍콩과 도쿄 같은 글로벌 허브 도시에도 퍼져나갔다. 서울도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다.

2010년부터는 금주령만큼 엄격한 규범의 나라 싱가포르에서도 번지기 시작했는데, 통제사회로 질서가 유지되는 싱가포르에서 꽃피는 스피크이지 바는 금지된 사랑만큼이나 매혹적이다.


1819년 영국 동인도 회사의 래플스 경이 동서양을 잇는 요충지 싱가포르에 무역항을 건설한 이후 싱가포르는 뉴욕처럼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가 됐다. 싱가포르 대표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은 영국 식민 시절 1915년에 래플스 호텔에서 탄생했다. 그 탄생 배경에도 통제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있었다.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절, 하이난계 바텐더 응이암통분(嚴崇文)이 호텔의 주요 손님이었던 영국 여성들을 위해 트로피컬 음료수로 위장한 진 베이스 칵테일을 개발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 스피크이지 바에서 음료수를 위장한 다양한 칵테일이 개발됐던 것도 동서양을 막론하여 금지가 낳은 보석이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 중심 업무 지구 래플스 플레이스 쇼핑몰의 '테일러 애덤(Taylor Adam)' 스피크이지 바는 비스포크 테일러숍 외관부터 영국의 문화적 영향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피팅 예약 확인이 입장 암호이며 빨간 커튼 너머 피팅룸 안쪽 비밀 공간에는 믹솔로지를 맞춤양복의 예술로 승화시킨 비스포크 칵테일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챕터로 구성된 메뉴 또한 예사롭지 않다. 2021년 오픈부터 매년 두 번 씩 새로운 챕터를 내놓는다. 무역과 여행의 풍부한 역사에서 얻는 영감을 기반으로 동남아 테마가 챕터 10으로 이어지고 있다. 각 챕터에서 인기가 많은 것들은 올 타임 페이버릿(All Time Favorite)으로 구분해 두는데, 시그니처 칵테일은 '카르페디엠'이다.


몽키숄더 블렌디드 몰트 스카치위스키 베이스로 우디함을 깔아주고, 비터스는 향신료의 여왕 카다멈이 들어간다. 생강과 레몬 사이의 중성적인 상큼함이 더해지면서 칵테일의 묵직한 보디감이 깔끔한 피니시로 연결된다.

테일러 애덤의 'TA' 이니셜로 음각 도장이 찍힌 사각 얼음 위 가니시는 그레이프프루트 말린 껍질이 시크하게 올라간다. 카르페디엠의 화룡점정은 토치로 불을 붙인 시나몬 스틱이다. 시가처럼 연기를 퍼트리며 고독한 감성을 끌어낸다. 믹솔로지스트의 추천대로 불붙은 시나몬 스틱을 칵테일에 담그면, 스모키함이 입안으로 자욱하게 퍼지며 카르페디엠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테일러 애덤에는 비밀 출구도 있다.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VIBE 비스트로 싱가포르 퀴진 레스토랑'으로 탈출 동선이 디자인됐다. 100여 년 전 스피크이지 바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지역 특색을 융합시킨 표본이라 하겠다.


금지된 대상을 논할 때 아편도 빼놓을 수 없다. 1819년 래플스 경이 싱가포르 건국 때 들여온 아편은 19세기 싱가포르가 도시로 성장하는 경제적 원동력이자 심각한 사회 문제도 불러온 주범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강가 로버트슨 키(Robertson Quay)는 활발한 무역으로 분주한 부두였다. 아편 거래도 많았다. 오늘날 다채로운 미식 레스토랑과 트렌디한 바가 즐비한 곳으로 탈바꿈한 이곳의 중심부, 옛 부둣가에 '찬두(Chandu)' 스피크이지 바가 있다. 찬두의 믹솔로지스트가 귀띔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2023년 모던 스피크이지 바 찬두가 자리 잡은 곳이 19세기에 로버트슨 박사가 마피아 무역상들에게 제공했던 아편굴 자리라고 한다.

로버트슨 하우스 호텔 외벽 구석진 곳의 검은 벽면에 둥근 달빛 손잡이가 있는 미스터리한 문이 있다. 오른쪽 문에는 스파이홀이 있는데, 노크하면 작은 슬라이드 문이 열리고 매서운 눈빛이 나타날 것만 같다. 찬두는 말레이어로 아편, 힌디어로는 달을 뜻한다. 어둠 속 은밀한 둥근 달빛 손잡이가 찬두 테마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세기 아편굴 테마 공간이다. 그림으로만 봤던 아편 파이프가 눈앞에 있는 몽환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아편 대신 'Addiction/The Vice' 칵테일을 즐겨보기로 했다면, 혀끝에서 느낄 수 있는 미각의 불꽃놀이를 경험할 수 있다. 먼저 봄베이 사파이어 진 베이스로 솔향이 깔린다. 동서양의 조합으로 중국 백주, 마오타이 프린스의 사과와 복숭아 향이 더해진다. 생제르맹 엘더플라워 리큐어의 서구적인 꽃 향과 유자의 동양적인 풍미가 결합하고, 깨로 맛을 낸 세서미 플로렌타인 비스킷이 가니시로 올라간다. 칵테일의 이름 그대로, 중독성 있는 악랄한 풍미가 입안 가득히 번지는 치명적인 믹솔로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 외식 문화가 가장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곳이자 통제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반발 심리를 항상 자극하는 금지의 도시 싱가포르. 여기서 꽃피는 모던 스피크이지 바 문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갈구하는 정신적인 은신처, 청개구리들의 놀이터에서 꿈틀대는 믹솔로지 창작활동의 전개가 기대되는 이유다.

류재도 파크앤비욘드 크리에이티브 이사
?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