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국은 미국과 유럽의 상반된 ESG 정책 기조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지속가능성 공시제도를 설계하고 정착시켜야 할까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념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된 지 어느덧 5년이 되어갑니다. 이후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환경정보 공개 의무화, 상법개정 추진, 금융사 대상 책무구조도 도입 등 다수의 ESG 관련 법안이 시행되며 제도적 기반이 빠르게 마련되고 있습니다. 특히 거버넌스 측면에서 기업의 투명한 IR 활동과 ESG 정보공개는 투자자 신뢰 확보의 주요 요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 ESG 관련 주요 화두는 단연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입니다. 한국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인 유럽과 미국은 모두 ESG 제도 정착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은 정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규제 중심의 접근법을 취하는 반면, 미국은 시장참여자의 자율성과 선택에 기반한 다소 자발적인 참여 접근법을 취해왔습니다. 2025년에 들어서면서 양측의 간극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고 연방 차원에서 ‘탈(脫)ESG’ 기조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금융 확대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의무화를 비롯한 ESG 정책을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상황은 더욱 복잡합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3월에 지난해 제정된 기후 공시 규정을 철회했으며, 연방 차원에서도 탈탄소 인센티브, 재생에너지 및 청정기술 세제 혜택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미국 내 주(州)별로 각각 상이한 ESG 정책이 공존합니다. 텍사스, 플로리다 등 약 20개 주는 반ESG 법안을 통과시켰고, 일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캘리포니아주는 2027년부터 스코프 3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강도 높은 ESG 정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ESG 공시 의무화의 선도적 역할을 해온 EU는 기업과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ESG 규제 내재화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프랑스, 독일 등 일부 회원국으로부터 현실을 반영한 규제 완화 또는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의 EU 옴니버스 패키지 도입, 이중중대성 평가 절차 간소화, 보고 요건 축소 제안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실제로 지난 7월,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는 앞서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이 제안한 중소기업용 자발적 ESG 공시기준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EU는 강력한 지속가능성 추진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정치적·경제적 현실을 반영한 조정 단계에 들어선 모습입니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이미 공시기준 초안을 공개했으며, 시행 시기와 적용 범위를 두고 조율이 진행중입니다. 국내에서도 지속가능성 공시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요구가 교차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명확한 기준과 투명한 소통, 단계적 이행 전략을 기반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면서도 한국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성 공시제도의 안착을 위한 정비가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동호 미래에셋증권 ESG&IR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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