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시에서 제약·바이오주가 차기 주도주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기존 주도 업종의 상승세가 주춤한 가운데 저가 매수 기회로 판단한 자금이 흘러든 덕분이다. 금리 인하 기대 속 기술이전 계약 체결 소식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 66개로 구성돼 있는 ‘KRX 헬스케어’는 이달 들어 12.11% 상승했다. ‘KRX 300 헬스케어’ 지수도 이 기간 11.73% 올랐다. 전체 34개 KRX 테마지수 중 수익률 상위 1, 2위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1.87%)와 코스닥지수(0.79%)가 부진한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도 테마였던 KRX 반도체 지수는 이달 4% 넘게 급락했다.
개별 종목 중에선 에이비엘바이오의 상승세가 독보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14일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최대 3조8000억원대 규모의 기술 수출에 성공한 데 이어 220억원(1500만 달러) 규모의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주가도 지난 11일 이후 3거래일 연속 오르면서 78.6% 급등했다. 주가 상승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증권가 목표주가 상향이 주가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증권가에선 쫓기듯 목표주가를 올리는 형국이다. 지난 14일 교보증권이 에이비엘바이오 목표주가를 기존 12만원에서 19만원으로 올렸다. 이달 들어 메리츠증권(목표주가 12만원→18만원) 다올투자증권(12만원→16만원) 키움증권(10만원→18만원) 등 4개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올렸다. 상향에도 불구하고 이들 증권사가 제시한 평균 목표가(17만5000원)는 이미 현 주가(17만4300원)에 근접한 상황이다.
비만치료체 테마에서 임상 성공 기대가 큰 종목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두드러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국산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신약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기대감이 크다는 게 증권업계 분석이다. 지난 4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자사 비만 신약의 임상 1상 진입을 위한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지난달에는 비만 신약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의 3상 중간 분석(톱라인) 결과 투여 40주차에 평균 9.75% 체중 감량률을 확인했다는 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향후 임상 결과에 따라 글로벌 비만약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은 체중 감소와 근육량 증가 효과가 함께 있는 비만 신약 임상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서 “임상 결과에 따라 노보노디스크 ‘위고비’, 일라이 릴리 ‘마운자로’에 이어 세 번째로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에이비엘바이오의 기술 수출 등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연간 기술 수출 규모는 약 17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며 “투자심리가 개선되며 바이오 섹터의 긍정적인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와 더불어 ‘키 맞추기’ 장세가 바이오 종목에 호재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금리가 낮아지면서 자금 조달이 유리해진다. 인공지능(AI) 등 단기간 가파르게 오른 주도주가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상대적으로 덜 오른 바이오 섹터에 ‘머니 무브’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가들이 한동안 소외됐던 바이오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달 외국인 순매수 1위와 4위엔 셀트리온(3783억원 순매수)과 알테오젠(1183억원)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기관도 알테오젠과 셀트리온, 에이비엘바이오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서도 에이비엘바이오와 한미약품, 리가켐바이오를 주목하고 있다. 이달 들어 유진투자증권과 IBK투자증권 등 6곳이 한미약품의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이들 증권사의 평균 목표주가는 53만8000원이다. 지난 14일 한미약품 종가보다 14%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는 진단이다. 리가켐바이오의 평균 목표주가도 기존보다 15% 상향된 19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이달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기술 수출 소식과 금리 인하 시기가 맞물리면서 바이오 섹터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주요 임상 결과나 데이터 발표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바이오 섹터의 투자심리도 더욱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 파트너사 넥스트큐어와 공동개발 중인 항체·약물접합체 ‘LNCB74’의 글로벌 임상 1상에 대한 초기 유효성 입증 데이터를 내년 상반기 중 공개할 예정이다.
바이오 섹터에 투자할 때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간접 투자 상품을 활용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바이오 섹터 특성상 연구 성과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데다 임상 실패 등 개별 종목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코스닥시장 바이오 종목 전반에 투자하고 싶으면 ‘TIGER 코스닥150바이오테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ETF는 코스닥150 구성 종목 가운데 바이오 테마에만 투자한다. 이달 들어 11% 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바이오 의약품과 의료 기자재 업체 등 60여 개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헬스케어 ETF’도 9% 넘게 오르면서 투자자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류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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