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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비엔나 왈츠? 국립심포니는 '이탈리아'로 답했다

입력 2026-01-12 14:37   수정 2026-01-12 14:38

신년음악회라면 오스트리아 빈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들뜬 리듬과 위트 사이로 우아함과 약간의 겸양이 고개를 내미는 왈츠로 새해를 맞는 건 중부 유럽의 전통.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 클리셰 같은 레퍼토리에 반기를 들었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이탈리아 곡들로만 새해 맞이 공연을 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민첩함 요구한 국립심포니 새 지휘자

레퍼토리를 책임진 지휘자는 로베르토 아바도. 올해부터 3년간 국립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기로 한 이탈리아인이다. 할아버지가 밀라노 음악원 교수, 아버지가 밀라노 음악원장, 삼촌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끈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던 만큼 그는 고향 음악에 애정이 가득하다. 자신의 취임 연주회에서 타국 작품 없이 이탈리아 곡만 연주한 배경이다. 악단 음악에 집중하고자 협연자도 두지 않았다. 첫 곡으론 20세기 초 활약한 작곡가 레스피기의 ‘환상적인 장난감 가게’를 골랐다. 발레를 위해 편곡된 작품답게 춤곡 특유의 리듬감이 넘실거리는 30분 길이 작품이다.

악단은 타란텔라, 마주르카, 코사크 무곡, 캉캉, 왈츠 등 유럽의 다양한 춤곡을 오가며 장난감 인형들이 사람들 몰래 춤추는 모습을 그려냈다. 백발을 휘날리며 무대에 오른 71세 아바도는 연주 중 주안점을 두는 악기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해석에 따라올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일정한 강세를 유지하면서도 강약을 섬세하게 조절하며 짧은 시간 안에 음량을 조절해 소리가 넘실거리는 느낌을 담아냈다. 곡의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다 보니 색감이 현란한 광고 영상을 이어 보는 듯한 인상이 나기도 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채로운 악기들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충분했다. 현악기의 보조를 맞추며 타격감을 조절하던 트라이앵글, 병정 인형의 딱딱거림 같은 캐스터네츠 소리는 부드러운 목관 사이에서 청량감을 드러냈다. 마지막 춤곡인 갤럽(원을 그리며 춤을 출 때 쓰이는 4분의 2박자 곡)에선 기수가 탄 말이 속보로 걷다가 뛰는 것처럼 바이올린이 속도감을 끌어올렸다. 아바도는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를 섬세하면서도 또렷이 제어하는 드라이버 같았다. “유연한 악단을 만들겠다”던 그의 말답게 악단은 지휘자의 의도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했다.

피콜로와 플루트가 선사한 봄날의 새소리

공연 2부에선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에 쓰인 곡 ‘사계’가 관객을 맞았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의 통치에 불복했던 시칠리아인들이 봉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곡 자체는 시칠리아의 자연 풍경에 집중한다. 봄날의 새소리 같았던 목관의 독주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피콜로와 플루트가 안정적인 호흡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생생한 고음을 선사했다면 오보에는 고풍스러운 울림으로 무대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밝은 분위기 덕분에 클라리넷의 음 이탈도 귀엽게 들렸다.



마지막 곡은 로시니 오페라 <윌리엄 텔>의 서곡. 첼로의 감미로운 서주로 시작한 악단은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 속 고양이와 쥐의 추격전을 음악으로 재현하듯 밝고 긴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맥도날드의 빅맥 광고 음악으로 친숙한 피날레를 연주할 땐 현악 연주자들의 열의 넘치는 활 움직임이 돋보였다. 지휘를 마친 아바도는 앙코르 대신 사인회를 여는 것으로 이날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번 공연으로 아바도는 이탈리아 오페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열의를 증명했다. 지난해 3월 그가 국립심포니와 선보였던 베르디 <레퀴엠>의 안정적인 연주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이날 공연이 1년 전의 향수를 자아내기도 했다. 아바도는 국립심포니와 함께할 3년간 멘델스존과 슈만 등 낭만주의 음악을 파고들면서 괴테, 셰익스피어 등 대문호와 음악 사이의 접점을 탐구하기로 했다. 다음 달 11일 예술의전당에선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의 곡으로 관객을 맞는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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