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책 당국이 제시해 온 자본시장 목표는 단지 높은 지수 달성이 아니다. 기술 혁신 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성장하여 투자자와 함께 성과를 공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기술특례 상장 제도는 재무 성과가 충분하지 않은 혁신 기업도 자본시장이라는 큰 틀 안에서 평가받고 관리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핵심 정책이었다. 기술이 있고, 사업의 방향성이 옳다면 일찍 시장과 만나도록 길을 열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현장의 제도 운용은 때때로 그 취지와 혼선을 빚는다. 기술과 사업성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기업이 기술특례 상장을 준비하며 내부 관리 체계를 정비해도, 심사 과정에서 회사 운영과 무관해 보이는 외부적 요소가 판단의 중심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기술특례 상장은 본래의 역할을 잃고, 상장 이전에 모든 잠재적 가능성을 정리해야만 하는 절차처럼 보일 위험이 생긴다. 이는 기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자본시장은 외부 논란 자체보다는 그것이 기업의 운영과 실질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게 된다. 즉, 어떠한 외부적 요인이 회사의 자금 흐름, 계약, 사업 방향,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지를 보고 평가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연결성이 분명하지 않다면, 시장은 그 이슈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상장 심사에서는 이런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혹시 모를 변수가 핵심 요소로 다뤄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시장의 평가 기준과 제도 운용의 판단 논리가 어긋나는 것이다.
이러한 간극은 한두 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사례는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제도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불만을 키우게 된다. 혁신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상장에 진입하고, 이후 어떻게 시장의 규율 아래 관리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기술특례 상장을 통한 자본시장 진입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이는 결국 정부가 의도한 혁신 중심 자본시장이라는 목표와도 충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다. 오히려 거래소의 기술특례 상장 심사 기준과 재량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일일 것이다.
첫째, 심사 판단 대상은 일관되게 ‘기업 운영과 실질적 연결이 있는 요소’여야 한다. 회사 외부에서 발생한 상황이 있다면, 그것이 기업의 운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을 상장 판단의 핵심 변수로 삼는 것은 제도 취지와 어긋난다.
둘째, 현재의 영향과 가능성 차원을 구분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지금 기업 운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와, 장래에 가능성이 존재하는 위험은 성격이 다르다. 가능성 차원의 우려만으로 상장 판단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특례 상장은 현재의 통제 가능성을 전제로 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셋째, 상장 이후의 관리 기능을 제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공시·감사·주주 감시 등은 상장 이후에도 기업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기술과 사업에 중대한 문제가 없고, 내부 관리 체계를 제대로 갖춘 기업이 상장 이후 제도적 감시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정책 의도에 부합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정리될 때 기술특례 상장은 다시 정책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예측 가능해지고, 투자자는 제도의 신호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시장은 제도를 신뢰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상장 건수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지금의 증시 상승은 정부 정책과 시장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제도의 운용이 정책 방향과 일관되게 맞물리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신뢰를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술특례 상장은 정책의 한 축이며, 그 축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심사의 기준과 재량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코스피 5000·코스닥 1000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숫자가 아닌 신뢰의 자본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혁신 기업이 지속적으로 시장과 만나고,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한 기준 아래 판단할 수 있는 구조 말이다.
그 방향이 정립될 때 이 시대의 성과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에스에이프라이빗에쿼티 김현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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