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저장 시설이 가득 차 생산을 줄이는 상황에 몰린 데 따른 차선책이다. 이라크는 저장 탱크가 포화 상태에 가까워져 하루 약 150만 배럴 감산을 결정한 바 있다.
미리 매설한 우회 송유관도 적극적으로 이용 중이다. 이란이 과거부터 수차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경고함에 따라 사우디와 UAE는 우회 송유관을 갖추고 있다. 육상을 통해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만큼 이란 공격에서 안전하다.
사우디는 호르무즈해협에 접한 동부 아브카이크 유전에서 홍해 얀부 항구까지 이어지는 1200㎞ 길이 동서횡단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 송유관은 하루 약 500만 배럴을 수송할 수 있다. 2019년에는 천연가스액화물(NGL) 파이프라인도 원유 운송용으로 전환해 일시적으로 하루 700만 배럴을 처리한 적이 있다.
UAE 역시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다. UAE는 수도 아부다비 인근 유전지대인 하브샨과 인도양에 접한 푸자이라 항구를 연결하는 370㎞ 길이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이 아부다비 원유 파이프라인(ADCOP)은 하루 약 150만 배럴의 수송 능력이 있으며, 아부다비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오만만 내 푸자이라 항구로 운송한다.
지난해 6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분석에 따르면 두 송유관의 미사용 용량까지 활용할 경우 하루 평균 약 260만 배럴을 추가로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운송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정은 사우디를 비롯해 UAE, 쿠웨이트, 이라크 등 걸프 산유국이 모두 비슷하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고, 이란 전쟁 이후 이 해협 인근에서 선박 최소 10척이 공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의 정유 허브’ 바레인이 이란의 공격을 받고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불가항력은 전쟁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따라 제품 공급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책임을 면하기 위해 발동하는 조치다. 앞서 쿠웨이트 등도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사우디 얀부 항구가 송유관을 통해 운송된 원유를 선박에 실어 보낼 만큼 적재 능력이 충분한지도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케플러에 따르면 얀부 항구의 원유 선적량은 2020년 4월 기준 하루 150만 배럴 수준이 최대치였다. 송유관이 원유를 수송하더라도 이를 배에 옮겨 싣는 것은 별개라는 의미다.
홍해로 향하는 송유관이 이란 세력의 새로운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해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항로 길목인 예멘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조직 후티 반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당시에도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으로 해상 운송이 차질을 빚었다.
우회로를 이용하는 유조선 운임도 폭등하고 있다. 해운 중개업자는 “유조선 판타나사호가 오는 28~29일 얀부 항구에서 선적해 한국으로 운송하는 계약을 2800만달러에 체결했는데, 이는 평소 운임의 두 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또 해운사들이 중동 항로 운항을 꺼려 여러 원유 운송 계약이 체결 직전에 무산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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