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미술관과 성격이 다른 서서울미술관은 전문 관장 체제로 운영된다. 지난해 1월 박나운 관장이 임명됐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 문화본부를 거치며 현장과 행정을 두루 경험한 박 관장을 만나 서서울미술관의 비전을 들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개관부터 박물관에서 경력을 쌓아왔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차이를 어떻게 보는지.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시는 정말 다릅니다. ‘검증되지 않은 것는 전시할 수 없다’가 박물관의 원칙입니다. 따라서 최소 10년에서 20년까지의 시간을 두고 연구한 성과들이 나왔을 때 그를 기반으로 한 전시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술관은 작품만으로도 이야기가 됩니다. 관람자의 상상을 더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가정이나 상상이 없기 때문에 박물관 전시는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모습에 도달했는지를 추적해 가는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미술관은 현 시대에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들에 얼마든지 화두를 던져가며 전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가 됩니다."
▷전문 관장을 둔 서울시립미술관은 사진미술관과 서서울미술관이 유일합니다. 부임 소회가 궁금합니다.
"부담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랫동안 서서울미술관 개관을 기다리셨습니다. 당초 2023년 개관이 목표였으나, 2026년에야 관람객을 맞이하게 됐으니 실망도 하셨을테고요. 하지만 모두 관심과 애정으로 받아들여 더 나은 모습의 미술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개관이 미뤄진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건물 준공에 필요한 재료 수급 문제가 가장 치명적이었습니다. 시멘트 트레일러 기사 및 래미콘 운송노조 파업이 겹치면서 계획한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요. 겨울철 한파로 땅이 얼어 조경 공사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개관이 미뤄진 이유는 건물의 구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서서울미술관은 위층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하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지하라는 점을 고려해 설계에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맞은편 안양천의 영향으로 습도가 과하게 높아져 보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건물이 위로 높지 않아 옥상의 찬 공기와 난방을 튼 실내 전시장이 바로 맞닿으면서 결로 현상도 발생해 어려움이 있었고요. 앞으로 유지 보수에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을 세심히 살피며 운영할 계획입니다."


▷서서울미술관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서서울미술관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서울시 최초 공립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과 ‘지역민과 함께 진화하는 미술관’. 그리고 마지막은 ‘누구나 쉽게 찾는 일상의 미술관’입니다.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첫 번째입니다. 뉴미디어라고 하면 실감형 영상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많이들 떠올립니다. 인공지능이나 코딩, VR, AR처럼 과학 발전에 따라 파생되는 기술들을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서울시립미술관이 정의하는 뉴미디어는 조명과 영상, 음향 등을 이용한 예술 작품을 비롯해, 퍼포먼스와 무형의 개념 미술, 인터넷이나 코딩 등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아트까지 매우 광범위합니다. 동시대에 이뤄지고 있는 모든 실험적인 예술을 포함해 뉴미디어 예술을 아주 넓은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뉴미디어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란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학예사들과 연구하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조류도 받아들이며 뉴미디어 특화 서서울미술관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의의를 두려 합니다."
▷국내외 미술관 중 인상 깊었던 곳이 있다면.
"독일 카를스루의 미디어아트 기관 제카엠(ZKM, Zentrum fur Kunst und Medien Karlsruhe)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군수품 생산 시설이 모여 있던 카를스루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쇠락했지만 제카엠이 들어서면서 환골탈태하게 됩니다. 지금은 독일의 실리콘밸리라 할 정도의 IT 도시로 거듭났죠. 이 도시의 모습이 서울 서남권과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IT 지역하면 판교 일대를 많이 떠올리곤 하는데, 자본 규모가 큰 대기업이 판교에 상당수 포진돼 있는 것은 맞지만,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 디지털 밸리 등이 있는 서남권은 소규모 IT기업 최대 밀집지입니다.
서서울미술관이 금천예술공장이나 금천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 기관이나 지역 작가 등과 협력해 이 지역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카엠을 서서울미술관의 롤모델로 삼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려 합니다."
▷앞으로 서울 서남권 지역성을 담은 전시를 진행하실 계획인지.
"서남권은 매우 특별한 지역성과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 대규모 제조업 단지로 노동집약산업이 밀집돼 있던 이곳은 공장 3교대 근무로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지역이었죠. 하지만 지식산업센터들이 들어서며 지역의 산업 형태가 바뀌자 밤이 되면 이곳은 아무도 없는 도시로 변하게 됐습니다. 이런 지역의 모습이 작가들의 영감을 강하게 자극할 거라고 생각해요.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은 물론이고, 현재 지역 기반 IT 산업의 특성을 뉴미디어 아트에 반영하면 굉장히 좋은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봅니다.
미술관 앞을 흐르는 안양천도 굉장히 좋은 이야깃거리입니다. 1960년대 금천구에 공업 지역과 준주거지역이 생겨나면서 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 직선화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물이 고이는 구간이 발생하기도 하고, 공장 폐수나 생활 하수가 쌓이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수질이 악화됐다고 하더라고요, 안양천 물길의 변화와 생태를 복원해 나가는 모습 또한 뉴미디어 아트의 일환으로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미디어 작품은 아카이빙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하고 계신지.
"서서울미술관은 지난해 1월 1일자로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편입됐습니다. 이후 본관의 소장품 체계에 맞춰서 작품 분류와 등록 작업을 하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회화나 조각은 크기와 규격이 일정한데, 영상은 분량을 재는 것부터가 난관입니다. USB에 들어 있는 파일의 길이와 작가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영상의 분량이 다른 경우도 있고요. 작품 구현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구입해야 하는데 예산 문제로 하나씩만 구입해 작품 구동에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다만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대부분의 작품이 2020년 이후에 소장한 것이라 작가님들이 모두 살아계셔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웃음).
아카이빙을 해 보니 아주 상세한 가이드가 필요하겠더라고요. 하드웨어의 작동 방법을 담은 매뉴얼부터 전시장 현장의 배치, 퍼포먼스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디테일까지 모든 세부사항의 기록을 많이 남겨 다음 전시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또, 외부 전문가를 모셔서 아카이빙 전략에 대해 논의하며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볼 계획입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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