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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잉생산이 문제"…'301조' 꺼낸 미국의 황당한 논리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6-03-12 15:34   수정 2026-03-12 15:38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1일(현지시간) 한국 중국 일본 등을 포함한 16개국에 대해 "제조업 분야의 구조적 과잉 생산능력"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미국은 더 이상 과잉 생산능력과 생산 문제를 우리에게 수출하는 다른 국가에 자국의 산업 기반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수많은 부문에서 많은 미국 무역 파트너들이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이런 과잉 생산이 "미국 내 생산을 대체하거나, 그렇지 않았다면 가동되었을 미국 제조업 생산에 대한 투자 및 확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USTR은 함께 고시한 관보에서 글로벌 제조업 가동률이 75.0~75.9% 사이라면서 이것이 건전한 가동률(80%)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 제조업이 부진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자국 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다. 한국에 대해 "대규모 또는 지속적인 무역 흑자를 통해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과 생산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자기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기계, 철강, 선박 및 해양 장비 등의 수출을 중심으로 글로벌 상품 무역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USTR은 이런 논리를 한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사 대상국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했다. 각국의 설비 가동률이 떨어졌다는 것을 과잉 투자의 근거로 들었다. 일본에 대해선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계속 운영되는 일본 기업의 비율이 일본 경제의 과잉 생산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고, 노르웨이에 대해선 "수산물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이라고 했다.
◆ '해방의 날' 논리 그대로
이날 미국의 301조 조사 개시 내용은 작년 4월 '해방의 날' 수식을 길게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을 추려서 이들을 상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당시 미국 정부는 "지속적인 무역적자는 관세 및 비관세 요인의 조합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순수출 금액(수출-수입)을 수입으로 나눈 값에 0.5를 곱해서 상호관세를 산출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에 대해 '상호' 관세율이 25%로 나온 배경이다.

1년 가량이 지난 지금 트럼프 정부는 동일한 논리로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이 미국 아닌 교역 상대방에게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브리핑에서 “이런 과잉 생산 능력은 (실제) 과잉 생산, 지속적인 무역 흑자, 제조업 생산 능력의 미활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생산을 한 것을 누군가가 사 주지 않는다면 무역 흑자가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소비 수준이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높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경제학의 '국민계정 항등식'에 따르면 순수출(NX)은 초과저축(S-I)과 정부 재정수지(T-G)를 합한 금액이다. 동일한 조건 하에서 순수출을 늘리려면 소비를 줄이고, 투자를 줄이고,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

중국의 과잉생산과 보조금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보 정책이 '밀어내기 수출(덤핑)'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중국의 문제와 다른 모든 나라에 대한 불만을 일괄적으로 묶어서 '타국의 생산과잉'을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학의 논리에도 어긋난다.

모리스 옵스펠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미국 무역적자에 관한 세 가지 신화'라는 논문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 내부 요인이 지배적인 경우가 많다"면서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커지면 수입관세를 높이더라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치논리가 경제논리 압도
미국은 앞서 관세협상 과정에서도 명백하게 경제학 논리에 위배되는 내용을 적지 않게 주장했다. 초기 협상 과정에서는 한국의 임금 수준(중위 임금)이 미국에 비해 낮기 때문에 이를 보정하기 위해선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 한국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모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과의 무역은 불공정 무역이 된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가 최근 수년 사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한국이 대미투자를 많이 하면서 중간재 수출이 증가한 영향이 크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모른 척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 논리를 밀어붙이기 위해서 경제 논리는 무시되는 형국이다.

트럼프 정부가 강조하는 상품교역과 달리 서비스교역 부문에서 미국은 줄곧 흑자를 보고 있다. 구글과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를 중심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두는 중이고,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세계 각국의 투자는 지금까지도 미국에 집중되어 왔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 총 금액 중 5분의 1이 미국의 몫이었다.

USTR은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크지 않은 노르웨이도 조사 대상에 포함하면서 "국영 또는 국유 기업을 활용해 석유 수익을 자국 통화가 아닌 미국 달러 등 비자국 통화로 환원하는 등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는 효과를 내는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존재를 문제삼은 것이다. 이는 해외자산 비중이 58%에 달하는 한국 국민연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논리다.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해 해외 투자를 하는 것이 미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과잉 생산을 주제로 한 301조 조사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을 겨냥한 강제노동 관련 조사, 유럽 등을 겨냥한 디지털서비스법 조사 등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협상을 위한 지렛대를 가능한 많이 만들려는 전략인 만큼, 논리적으로 엄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 곧 미국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주장은, 교역 상대국에 미국과의 협업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301조 조사 결과에 따라 관세가 도입될 경우 차기 정부라 해도 이를 되돌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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