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더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민간인 피해 우려로 금기시된 발전소 공격을 예고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전 협상 조건 논의를 시작하는 등 출구전략 마련에도 고심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만약 이란이 48시간 안에 호르무즈해협을 완전히 열지 않으면 미국은 그들의 여러 발전소를 공격해 초토화할 것”이라며 “제일 큰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시간으로 22일 오전 8시44분께 입장을 내놓은 만큼 24일 오전 9시께가 이란에 제시한 데드라인이 될 전망이다.
발전소 타격은 이란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불편을 안기고, 전후 국가 재건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이 사용을 꺼린 카드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더 강한 압박 수단을 모색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란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란 중앙군사본부는 성명을 통해 “이란의 연료 및 에너지 기반시설을 공격하면 이란 역시 미국 동맹국의 모든 에너지와 정보기술(IT), 해수 담수화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아 보복하겠다”고 했다.
"향후 협상 위한 엄포" 분석도
척박한 이란 환경에서 전력 및 담수화 시설은 이란 국민의 생명줄이다. 국민의 고통을 강요해 이란 정부가 손을 들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때에도 이라크 전력망 대부분을 파괴했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민간 피해가 컸던 탓에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미국은 코소보 전쟁(1999년), 이라크 전쟁(2003년) 과정에서 송전선을 타격했지만 발전 시설은 공격하지 않았다.미국이 민간 피해를 감수하며 기반시설 타격에 본격 나서면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지만 반대로 이란 내 결속을 강화하고 이들을 극단적 테러 세력으로 바꿀 위험도 크다.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면 중동 전체와 유럽에도 큰 부담이 된다. 전문가 사이에서 “이번 위협은 지상전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이란과의 향후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엄포”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도 “더 심각한 피해”를 주겠다고 받아치며 강대강 대치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날 오전 이란은 본토에서 4000㎞ 떨어진 인도양 디에고가르시아 영·미 공동 군사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유럽을 향해 쏘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도 사정권에 들 수 있다. 미국은 이란산 원유 제재 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란은 “추가로 공급할 원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지상전을 결행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미국 전쟁부(국방부)와 백악관은 해병대 이동이 ‘최대한의 군사적 선택지 제공’을 위한 것이라며 지상전은 결정한 바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17~19일 미국 성인 1545명을 대상으로 한 로이터통신·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지지하는 의견은 7%에 그쳤다. 협상을 통한 휴전 가능성이 떠오르는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이 협상을 원하지만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액시오스는 스티브 윗코프 미국 중동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집트, 카타르, 영국 등을 통해 이란과 소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미국은 호르무즈해협 완전 개방을 비롯해 5년간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전면 중단, 우라늄 농축 작업 전면 중단, 핵 시설 폐쇄, 외부 사찰 및 감시 체계 도입, 역내 국가와 군축 조약 체결,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 등 대리 세력에 자금 지원 전면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전쟁 재발 방지와 피해 배상금 제공 등을 내걸고 있다. 이란에서는 의회를 중심으로 호르무즈해협 통행세 체제를 도입하자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다만 양측 간 불신이 깊어 협상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 입장을 내놨는데도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란이 미국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 과정에서 이란의 공격을 받은 걸프 국가도 이란 체제에 근본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휴전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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