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항행의 자유

입력 2026-03-24 07:00   수정 2026-03-24 09:07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영해 밖에서 항해의 자유는 절대 보장돼야 한다.’ 미국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1918년 의회에서 밝힌 ‘14개 조 평화원칙’의 두 번째 항목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전후 질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인데, 3·1운동에 불을 붙인 민족자결 원칙을 담고 있어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바는 무역국가, 해양국가라며 강력한 해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런 생각을 이어받은 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1900년대 초 미국 해군력을 영국에 육박하는 세계 2위로 끌어올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윌슨은 ‘항해의 자유’는 미국의 국익일 뿐 아니라 만국 공통의 원칙이라고 주창한 것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항해 및 상공 비행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비공식 작전을 벌여왔다. 영해 범위를 과도하게 주장하거나 군함의 무해통항(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한 영해를 통과할 수 있는 권리)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에 이를 용인할 수 없다는 미국의 주장을 선명히 하기 위한 일종의 무력 행사였다. 1979년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공식적인 ‘항행의 자유’(FON·Freedom of Navigation) 프로그램이 시작됐는데, 동맹국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을 겨냥한 작전이 두드러졌다. 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의 1이 지나는 남중국해와 컨테이너선 절반이 통과하는 대만해협에서다. 동맹국 함정까지 참가해 연례행사가 된 항해에 중국은 “주권 침해”라고 발끈하지만, 우리에게도 사활이 걸린 해상로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이 회원국과 한국, 일본 등 22개국이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을 확보하기 위해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르무즈라는 세계의 에너지 동맥을 틀어막은 채 미국과 맞서고 있는 이란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경제의 피가 마르는 형국이다. 호르무즈를 다시 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때가 됐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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