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음악에서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라’는 '스타카토(Staccato)'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반대 의미인 ‘레가토(Legato·부드럽게 연주하다)’의 기억은 희미하더라도 말이다. 그만큼 흔하게 쓰이면서 사용 대비 효과적인 기법이기도 하다.
스타카토는 짧고 순간적인 자극으로 곡 전체에 경쾌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연주자에겐 쾌감을, 듣는 이에게는 감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접시 위에서도 이런 스타카토의 마법이 존재한다. 산미로 맛을 일깨우거나, 허브로 반전을 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때로는 강렬한 포인트 컬러의 식재료로 시각적인 요소를 강조하기도 한다.

츠마미(안주)를 몰아서 내주고 나중에 스시를 쥐어주는 일반적인 스시야 루틴과 달리, 츠마미와 니기리(스시)를 변칙적으로 번갈아 가며 템포감 있게 내주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술을 곁들이며 먹기에 최적화된, 즐거운 리듬감을 주는 곳이다. 사케 가격대가 좋고, 완성도 높은 요리 덕분에 스시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근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이 곳은 오마카세 중간에 등장하는 시라코(복어 이리)찜이 그 명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몽글몽글하고 따끈한 구름 모양의 찜 위에는 노오란 유자 제스트가 카푸치노의 시나몬 파우더처럼 사뿐히 올라가 있다. 시라코를 조심스레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겉보기의 청순하고 산뜻한 비주얼과는 전혀 다른 압도적이고 묵직한 풍미가 밀려온다. 응축된 바다의 고소함과 달착지근한 쯔유가 손잡고 유려한 ‘레가토’의 선율을 이어갈 때쯤, 입안을 훅 치고 들어오는 쨍한 시트러스와 진한 유자 제스트가 혀를 강타한다.
지방이 많아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시라코 특유의 느끼함을 단숨에 끊어내며 기분 좋은 미각적 스타카토를 꽂아 넣는다. 원재료의 고소함을 한층 입체적으로 부각하는 것이다. 식초의 날 선 감칠맛이 양념의 깊이를 끌어올린다.
앞선 디쉬에서 이미 산초 얹은 시라코 달걀찜이 한 차례 등장했음에도, 짧은 간격을 두고 변주된 이 두 번째 접시는 산미라는 ‘스타카토’가 미각에 얼마나 압도적인 쾌감을 주는지 증명한다. 코스 전체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짧고 굵은 한 방이자, 감칠맛이 빚어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탕이 끓어오르면 맛의 스타카토는 더 확대된다. 건고추와 절임고추 2종, 총 3가지를 블렌딩해 우려낸 복합적인 매운맛이 베이스다. 여기에 그린페퍼의 얼얼한 향으로 물든 볼락 육수는 숙주, 푸주, 당면, 표고 등 씹을거리들이 입안을 노닐면서 신나는 음악을 연주한다.
이 와중에 보들보들한 볼락살이 매칼한 국물 사이에서 타격감을 주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뼈를 일일이 발라내고 탄력까지 살려낸 볼락살의 주위를 멤도는 마라의 향미가 일품이다. 하얀 국물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라 맛이 부담스럽지 않게 식욕을 끊임없이 이어지게 한다. 청양고추와는 다른 종류의 칼칼한 느낌으로 매력적이다.

쫀득하고 찰진 우럭 통살이 치아 사이에서 기분 좋은 식감의 타격감을 줄 때쯤, 경상도 사람들의 짙은 애정이 담긴 알싸한 제피(초피)와 향긋한 방아잎이 ‘스타카토’처럼 코와 혀끝에 박힌다.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농도의 맹렬하고 자극적인 향신료는 단숨에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맺히게 한다. 영혼까지 얼큰하게 울리는 이 묵직하고 원초적인 타격감 앞에서는 일주일의 피로가 씻겨 내려간다.
서울 삼성동 터줏대감인 이자카야 '란주쿠'는 묵직하고도 총명함 타격감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의 숯불 장어구이는 단순한 보양식을 넘어 완벽하게 계산된 식감의 예술이다. 타래 소스를 짙게 먹은 장어 사이에는 핑크페퍼가 존재감을 일단 과시한다. 진한 숯불 향을 머금은 장어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탱글하고 부드러운 볼륨이 입안을 빈틈없이 메우며 틈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핑크페퍼가 유례없는 강한 풍미로 스타카토 역할을 한다. 부드러움과 짧고 굵은 핑크페퍼의 풍미가 교차하는 이 극적인 대비는 술잔을 기울이는 밤의 템포를 기분 좋게 끌어올린다.
이 요리의 핵심은 지중해의 작은 붉은 새우, '감베레띠 로씨(Gamberetti rossi)'를 익힌 것(cotti)과 날것(crudi) 두 가지 방식으로 교차시킨 셰프의 섬세한 설계에 있다. 관광객들에게 종종 밥알이 덜 익은 것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이 요리는, 사실 쌀알의 단단한 심지를 살린 정통 '알 덴테(Al dente)' 스타일이다.

해산물 스톡을 한껏 머금어 녹진해진 쌀알은 부드럽게 익혀낸 붉은 새우와 진득하게 엉기며 혀 위에 뭉근하게 감긴다. 치아 사이에서 ‘툭툭’ 부서지는 쌀알의 텍스처 위로 끝없이 펼쳐진 포지타노의 바다처럼 여유롭고 진한 풍미다. 리조또를 부드럽게 감싸는 이탈리아 남부 특산물 레몬 즙은 이 평화로운 선율을 함께 구성한다.
이 잔잔한 미식의 바다를 경쾌하게 깨우는 것은 다름 아닌, 뜨거운 리조또 위에 차갑게 얹어진 날것의 감베레띠 로씨와 그 위를 흐르는 레몬의 산미다. 크리미한 리조또 사이에서 탄력 있는 붉은 생새우 살이 피어나며 단맛으로 식감의 스타카토를 완성하고, 아말피 레몬의 시트러스 향이 버터와 치즈의 풍미를 반 박자씩 경쾌하게 끊어내며 리조또 본연의 맛을 입체적으로 강조한다. 눈앞에 부서지는 지중해의 파도를 마주보며 맛보는 혀끝을 생동감 있게 두드리는 황홀한 곡이다. 덕분에 마지막 숟가락까지 지루할 틈 없이 미식의 연주를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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