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00조' 예고했는데…SK하이닉스 개미들 긴장하는 까닭 [종목+]

입력 2026-03-25 22:00   수정 2026-03-25 22:27


SK하이닉스가 공식적으로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주주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선진 자본시장 상장을 통해 자본조달이 한층 용이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불필요하게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25일 공시를 통해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Form F-1)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중 상장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공모 규모와 방식,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종 상장 여부 역시 SEC의 심사 결과와 시장 상황, 수요예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방침이다.

ADR은 직접 상장이 아니라 국내 기발행 주식을 활용한 간접상장 방식이다. 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자사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발행하는 증권으로, 통상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이번 상장을 통해 해외 자금 조달 기반을 넓히고 글로벌 투자자 저변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경기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글로벌 고객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강화된 재무 체력이 필요하다"며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곽 사장의 말대로라면 미 증시 상장은 자금조달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말 기준 순현금은 12조6944억원 수준이다. 현금성 자산까지 포함하면 35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전자의 순현금 규모가 약 92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와 비슷한 재무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 증시에 상장될 경우 현지 상장된 업체와 직접 비교가 가능해져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세계 1위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사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아왔다. 올해 실적 기반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에서 미국의 경쟁사 마이크론은 7.8배로 SK하이닉스(5.9배)를 웃돈다. 최근 주가 급등세를 탄 샌디스크(17.6배) PER은 SK하이닉스 PER의 3배에 달한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 ADR 상장을 통해 경쟁사와 밸류에이션 격차를 줄이려는 흐름인 '키 맞추기'가 나타날 수 있다"며 "ADR을 통해 형성되는 가격이 글로벌 투자자 기준의 새로운 밸류에이션 기준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향후 수년간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거버넌스포럼은 "2026~2028년 동안 189조원의 설비 투자와 수십조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한 이후에도 약 672조원의 잉여현금흐름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10조~15조원 규모의 ADR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잉여현금흐름이 넘치는데 기존 주주 입장에서 지분이 희석되는 신주 발행 방식은 반대한다"며 "주식 추가 발행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기존 주주 지분 희석 규모가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발행 주식 일부를 소각해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포럼은 "미국에 상장되는 ADR 규모가 200억~300억달러 수준은 돼야 충분한 유동성이 확보되고 상장지수펀드(ETF) 편입도 가능하다"며 "SK하이닉스 전체 발행 주식의 10~15%를 취득해 일부를 소각하고, 대부분을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규장에서 SK하이닉스 주가는 미 증시 상장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한때 100만원을 회복했으나 이후 상승폭이 축소되면서 0.91% 오른 99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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