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1월 20일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초인플레이션 탓에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4조2000억파피어마르크의 고환율로 거래됐다. 이때 얄마르 샤흐트 독일 중앙은행 총재가 재빨리 기존 파피어마르크를 대체할 렌텐마르크의 교환비를 결정했다. 1렌텐마르크를 1조파피어마르크와 맞바꾸는, 숫자 ‘0’ 12개를 지우면 되는 ‘간단한’ 조처를 한 것이다. 이는 1차 세계대전 이전 달러당 4.2골트마르크로 교환되던 시점으로 화폐가치를 되돌린 것이기도 했다.외국 화폐와 자국 통화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역사가 오랜 일이 아니다. 귀금속 함량이 중요했기에 화폐 발행권자가 누구인지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고대 한반도에서 중국이 발행한 명도전(明刀錢)과 오수전(五銖錢)이 유통됐고, 중세 일본 가마쿠라 막부에서 송전(宋錢)이 기준통화 역할을 한 이유다. 유럽에서도 무게와 순도가 일정한 베네치아 두카트 금화가 오랫동안 국제결제 시장을 장악했다.
근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화폐 운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거래증서를 작성하고, 각국이 주조한 화폐를 다루면서 환전 개념이 싹텄다. 하지만 19세기에 정착된 금본위제도에서 고정환율제가 작동하면서 환전은 여행자가 현지에서 쓸 돈으로 바꾸는 정도의 의미만 지녔다.
1971년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하며 모든 게 바뀌었다. 돈의 가치는 국제수지 성적표이자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준이 됐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에 수많은 사람의 이해도 엇갈렸다. 사업상 혹은 관광으로 외국을 찾는 이들은 은행과 카지노, 호텔, 법인·개인 환전소가 제시하는 천차만별 환율을 바라보며 수시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2021년 684곳에 달한 국내 개인 환전소가 5년 만에 15.78%(108곳)나 줄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방한한 외국인이 사상 처음으로 1800만 명을 넘었지만, 외국인 방문 필수코스이던 환전소는 ‘역주행’한 것이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결제가 확산하고 환율 메리트가 예전만 못한 점이 환전소 퇴장의 이유로 꼽힌다. 디지털 기술이 달러를 바꾸러 명동에 가는 풍경마저 빛의 속도로 바꿔버렸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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