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이 전세계로 뻗은 공급망을 타고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반도체 훈풍에 올라타 고공행진 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끌어내렸다.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을 사려던 유럽·북미 지역 소비자들 지갑 또한 닫게 만들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헬륨이 리스크로 부상했을 때는 2017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육로가 막히자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업 라스가스가 헬륨 생산 플랜트 2곳을 멈춰 세웠다. 세계 2위 헬륨 생산국인 카타르에서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렸던 전례가 있는 셈이다.
다만 당시엔 카타르 생산시설을 노린 직접적 타격이 없었다. 무엇보다 전쟁 상황이 아닌 외교·경제적 봉쇄에 따른 갈등 국면이었단 점은 이번 위기와 결정적 차이라 할 수 있다.
2023~2024년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을 공격했을 당시도 최근 상황과 비교되는 사례로 꼽힌다.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을 공격하면서 수에즈 운하를 통한 석유·가스 수송이 급감했다. 이때 전 세계 석유 시장은 미국·유럽 등 대서양 중심과 걸프만·인도양·동아시아 중심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선 유럽산 나프타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되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가전업계도 파장이 일었다. 미국 가전 업체 월풀은 홍해·수에즈 항로가 위협받으면서 아시아·유럽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자 유럽 사업이 영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하면서 운송 기간이 10~12일 더 지연된 것이다. 실제 월풀 최고경영자는 당시 북미 일부 선적도 1~2주 늦어질 수 있고 유럽 사업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앞서 1990~1991년 걸프전,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땐 오일쇼크로 전자·가전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제조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유가가 2~4배가량 치솟았기 때문. 소비심리도 짓눌러 가전 등 내구소비재 시장에 찬바람이 불었다.
이란은 앞서 카타르 라스라판 LNG·헬륨 생산시설을 공격했다. 국내 헬륨 가스 수입액을 보면 60% 이상은 카타르에서 들여온 것이다. 반도체 공정에 활용되는 고순도 헬륨은 카타르산 의존도가 80%에 이른다. 카타르 국영 가스회사는 연간 헬륨 수출이 14%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이 회사가 불가항력을 선언하면서 헬륨 수급 차질 우려가 제기됐다.
다만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사용 가능한 LNG 물량을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 또한 당장은 헬륨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쟁의 충격파는 소비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이번 전쟁이 3개월 안팎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가정한 뒤 올해 전 세계 정보기술(IT) 지출 증가율이 기존 10%에서 9% 수준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당초 5% 성장이 예상됐지만 3~4%대로 위축된다는 분석. 전쟁이 단기간에 마무리된다고 해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살아날 경우 기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일부 재량지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스마트폰 시장은 부품값 상승뿐 아니라 교체 주기 지연, 수요 위축 우려가 함께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메모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에너지 가격, 운송비, 외환 불안정 등 거시경제적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작년보다 15% 이상 쪼그라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 직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물류 리스크도 발생했다. 이란은 수에즈 운하와 같은 방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전쟁 대응에 나섰다. 주요 그룹들은 차량 5·10부제를 시행하거나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절감 기조에 맞춘 조치이지만 재계가 이번 전쟁을 단순한 지정학 리스크가 아니라 '실제 경영비용 변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과거 중동 갈등은 주로 유가 충격이나 물류 차질 등 간접적 요인으로 전자·가전 업계에 부담을 줬다면 최근엔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와 소비시장 위축으로 위기가 한층 피부에 와 닿는 형태로 진화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으면 반도체부터 스마트폰, 가전까지 원가 부담과 수요 위축 우려가 함께 커질 수 있다"며 "수요 둔화와 비용 상승이 동시에 오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9년 전 중동 갈등 때도 '헬륨 리스크'…가전도 '충격'
26일 전자·가전 업계에 따르면 이번 이란 전쟁은 그간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한꺼번에 맞물린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간 중동 지역 갈등은 유가 급등에 따른 비용 증가, 물류 차질, 공급망 위기 등이 각각 전개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번엔 공급망 재조정뿐 아니라 소비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가시화하고 있다.반도체 공급망에서 헬륨이 리스크로 부상했을 때는 2017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육로가 막히자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업 라스가스가 헬륨 생산 플랜트 2곳을 멈춰 세웠다. 세계 2위 헬륨 생산국인 카타르에서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렸던 전례가 있는 셈이다.
다만 당시엔 카타르 생산시설을 노린 직접적 타격이 없었다. 무엇보다 전쟁 상황이 아닌 외교·경제적 봉쇄에 따른 갈등 국면이었단 점은 이번 위기와 결정적 차이라 할 수 있다.
2023~2024년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을 공격했을 당시도 최근 상황과 비교되는 사례로 꼽힌다.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을 공격하면서 수에즈 운하를 통한 석유·가스 수송이 급감했다. 이때 전 세계 석유 시장은 미국·유럽 등 대서양 중심과 걸프만·인도양·동아시아 중심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선 유럽산 나프타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되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가전업계도 파장이 일었다. 미국 가전 업체 월풀은 홍해·수에즈 항로가 위협받으면서 아시아·유럽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자 유럽 사업이 영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하면서 운송 기간이 10~12일 더 지연된 것이다. 실제 월풀 최고경영자는 당시 북미 일부 선적도 1~2주 늦어질 수 있고 유럽 사업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앞서 1990~1991년 걸프전,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땐 오일쇼크로 전자·가전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제조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유가가 2~4배가량 치솟았기 때문. 소비심리도 짓눌러 가전 등 내구소비재 시장에 찬바람이 불었다.
미국·이란 전쟁, 중동 리스크 총망라…소비시장도 충격
이번 이란 전쟁의 경우 위험이 한층 더 가시화한 양상을 띠고 있다. 프랑스 산업가스 업체 에어리퀴드는 다른 지역 헬륨 물량을 고객사에 재배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쟁에 따른 영향으로 헬륨이 부족할 것이란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대만 TSMC에도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대만 당국은 미국산 물량을 들여오고 있다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공급 재조정 단계가 현실화한 상황이다. 이란은 앞서 카타르 라스라판 LNG·헬륨 생산시설을 공격했다. 국내 헬륨 가스 수입액을 보면 60% 이상은 카타르에서 들여온 것이다. 반도체 공정에 활용되는 고순도 헬륨은 카타르산 의존도가 80%에 이른다. 카타르 국영 가스회사는 연간 헬륨 수출이 14%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이 회사가 불가항력을 선언하면서 헬륨 수급 차질 우려가 제기됐다.
다만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사용 가능한 LNG 물량을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 또한 당장은 헬륨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쟁의 충격파는 소비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이번 전쟁이 3개월 안팎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가정한 뒤 올해 전 세계 정보기술(IT) 지출 증가율이 기존 10%에서 9% 수준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당초 5% 성장이 예상됐지만 3~4%대로 위축된다는 분석. 전쟁이 단기간에 마무리된다고 해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살아날 경우 기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일부 재량지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스마트폰 시장은 부품값 상승뿐 아니라 교체 주기 지연, 수요 위축 우려가 함께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메모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에너지 가격, 운송비, 외환 불안정 등 거시경제적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작년보다 15% 이상 쪼그라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 직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물류 리스크도 발생했다. 이란은 수에즈 운하와 같은 방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있다.
인플레 자극 땐 '이중 충격'…재계, '비용 변수'로 인식
로이터는 25일(현지시간) 미국·유럽·일본 기업들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토대로 이란 전쟁이 글로벌 경제를 흔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유가·가스, 관련 제품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하고 성장세를 둔화시키는 '이중 충격'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매체는 같은 날 KPMG 조사를 인용해 영국 소비자 중 약 40%가 비용이 많이 드는 구매를 뒤로 미뤘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전쟁 대응에 나섰다. 주요 그룹들은 차량 5·10부제를 시행하거나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절감 기조에 맞춘 조치이지만 재계가 이번 전쟁을 단순한 지정학 리스크가 아니라 '실제 경영비용 변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과거 중동 갈등은 주로 유가 충격이나 물류 차질 등 간접적 요인으로 전자·가전 업계에 부담을 줬다면 최근엔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와 소비시장 위축으로 위기가 한층 피부에 와 닿는 형태로 진화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으면 반도체부터 스마트폰, 가전까지 원가 부담과 수요 위축 우려가 함께 커질 수 있다"며 "수요 둔화와 비용 상승이 동시에 오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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