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고용·양극화…세 균열이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 경보 울렸다[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6-04-06 09:31   수정 2026-04-06 10:21


이란 전쟁 이이어지면서 미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전쟁으로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생산비용 증가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소비 여력을 갉아먹으면서 경기 둔화 압력까지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그 시기 상황(1970년대)에만 사용하고 싶다”며 이를 일축했지만 시장에서는 침체를 향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속도는 빠르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했고 걸프 지역 미군기지와 에너지 시설을 향해 미사일·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공급 충격의 진원지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동맥을 틀어막은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원유 생산이 2026년 하루 1360만 배럴, 2027년 1380만 배럴로 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증가폭이 제한적인 데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 충격이 워낙 커 미국 증산만으로 단기 수급 불안을 해소하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충격의 규모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경고한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가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 공급 충격을 합쳐놓은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석유·가스 외에도 비료·헬륨·황 등 석유화학제품 공급망까지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에너지 공급 충격은 곧바로 물가로 전이된다.

유가와 원자재값이 오르면 원재료를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물건을 수입해 판매하는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한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가격 부담 증가로 제품 값이 올라가며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무디스 “미국 경기침체 확률 48.6%”

경제전문 매체 CNBC에 따르면 무디스애널리틱스는 미국이 향후 12개월 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을 48.6%로 높였다. 골드만삭스는 전망치를 30%로, 윌밍턴트러스트는 45%로 상향했다. EY파르테논은 전망치를 40%로 올려잡는 한편 중동 분쟁이 더 장기화되거나 심화될 경우 이 확률이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아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침체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3월 25일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아직 사태를 예단하기엔 이르다면서도 “에너지 가격 상승은 역진세다. 부유층보다 빈곤층에 충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재정적 취약성도 충격 흡수를 어렵게 만든다. 뱅크레이트의 지난해 12월 설문에 따르면 미국인의 47%만이 예상치 못한 1000달러 지출에 대비한 비상금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29%는 비상 자금보다 신용카드 빚이 더 많다고 답했다. 신용도가 우수한 대출자도 연간 카드 이자율이 20%에 달한다.

특히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는 이중경제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 경제지 포춘은 미국 경제가 부유층과 그 외 계층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K자형’에서 중산층마저 이탈한 ‘E’자형 경제구조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고소득층이 자산 가격 상승을 등에 업고 빠르게 회복한 반면, 중산층의 회복 속도는 현저히 뒤처졌다고 분석했다. 기존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 격차에 더해 고소득층과 중산층 사이에서도 새로운 균열이 생겼다는 얘기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상승은 최근 미국 정치권의 화두인 고물가 속 ‘소비여력(affordability)’ 문제를 더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22일 미국에서 디젤 가격은 갤런당(약 3.78L) 5.2달러(약 7500원)를 넘어섰다. 한 달 만에 약 40%가 뛰었다.

소비자심리도 바닥을 치고 있다. 미시간대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51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에 근접했다가 다소 회복됐지만 3월 예비 조사에서는 55.5로 다시 하락해 2026년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인 60% “유가 급등 트럼프 탓”
유가 급등으로 촉발된 물가 압력이 서민 가계를 짓누르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흔들리고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일혁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류비 증가와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인한 구매력 저하는 정치적으로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미국 야후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에 의뢰해 지난 3월 12~16일 미국 성인 16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들의 80%는 이미 휘발유 가격이 너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67%는 향후 몇 달간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격 인상을 전망한 이들 가운데에는 이란(13%)이나 석유회사(12%)보다 트럼프 대통령(60%)에게 인상 책임이 있다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물가상승과 함께 미국 경제를 압박하는 요인은 노동시장이다. NH투자증권은 5일 미국의 3월 고용이 반등했지만, 4월부터 전쟁 영향이 반영돼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융 연구원은 "4월 데이터부터 유가에 민감한 부문(운송)을 중심으로 고용 둔화가 예상된다"며 "중동 갈등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영향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인디드(INDEED·미국 구인구직 사이트) 내 구인 공고수는 전쟁 이후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3월 27일 기준 전쟁 이전보다 (구인 공고수는) 약 2% 감소했고, 가까운 4월부터는 유가에 민감한 운수·창고 및 소매 등 업종의 고용 둔화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심각한 것은 고용의 집중도다. 의료·사회복지·사립교육 분야에서만 70만 명 이상 증가한 반면, 나머지 분야는 지난 1년간 오히려 50만 명 이상 줄었다. 알리안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댄 노스는 기관차 한 대만으로는 철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며 의료 부문에 집중된 고용 구조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인공지능(AI)의 확산도 노동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AI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다. 김일혁 애널리스트는 소비가 늘기 어려운 환경에서 매출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고 기업들이 마케팅 비용 축소 같은 단기 대응보다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구조적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며 AI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고용 축소 가능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노동시장에서 목격되는 ‘채용도 해고도 없는’ 동결 현상이 AI 도입과 맞물려 구조적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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